[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전세계 시장, 특히 스마트폰 시장이 너무 많이 줄어들었어요. IT 제품군 전체적으로 시장이 커지는 품목을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산업연구원에서 반도체 등을 담당하는 주대영 연구위원은 우리 수출만 생각하면 한숨이 깊다. 우리 경제를 이끌던 반도체와 스마트폰 같은 ‘빅샷’이 더는 보이지 않아서다. 세계 교역량이 감소한 영향이 크다. 최근 3년 전세계 교역물량 증가율은 2.9%였다. 세계 경제성장률(3.3%)보다 낮았다. 우리 수출이 최근 적신호를 보이는 건 이런 구조적인 요인 탓이다.
주 연구위원은 “브라질 리우올림픽이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TV나 스마트폰 등을 사겠다는 수요가 많지 않다”면서 “시장이 죽어도 너무 죽었다”고 걱정했다.
굴지의 IT업체인 삼성전자(005930)가 스마트폰 사업을 ‘양보다 질’ 기조로 전환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세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 현지에서 삼성전자와 진행한 투자자 미팅 분위기를 전하며 “삼성전자가 무선사업부 부문에서 점유율 확대보다는 수익성 극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전략은 유효해 보인다”고 했다.
韓 수출액 ‘사상 최장’ 18개월 역성장 불가피
우리 산업계가 직면한 냉정한 현실은 수출 통계에서 그대로 확인되고 있다. 사상 최장기간 수출의 역성장이 계속되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현 경제 상황을 이겨내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수출 증대가 필수적”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것이다.
관세청 측은 이번달 수출액을 두고 “20일까지 조업일수가 13일로 전년 동기(15일)과 비교해 이틀 적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근무일수를 고려하면 오히려 0.6%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번달 말까지는 수출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전세계 교역량 하락+낮아진 한국제품 경쟁력
다만 경제계 전반의 생각은 다르다. 회복이 어려운 여러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 교역 전반의 축소 외에 또 꼽히는 게 우리 제품군의 경쟁력 하락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반도체 컴퓨터 통신기기 제약 과학측정기기 항공우주 등 첨단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을 분석한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연구원에 따르면 2010~2014년 우리 첨단 제조업의 무역특화지수는 0.054다. 2005~2009년 0.075보다 크게 낮아졌다. 무역특화지수는 0를 기준으로 더 크면 비교 우위로 해석한다. 아직 경쟁력 자체는 우위에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더 약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의 산업주기가 우리나라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를테면 1960년대만 해도 번창하던 일본의 경공업이 1970년대 말 몰락의 길로 접어든 건 우리나라의 성장 때문이며, 20년 후인 1990년대 우리나라의 경공업 비중이 줄어든 건 중국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기술의 모방이 용이한 산업일수록 시장을 다시 빼앗기기 쉽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우리 수출의 부진을 두고도 “당분간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갖가지 제언들 나오지만…“찔끔 투자” 비판도
해법은 무엇일까. 제4차 산업혁명 등에 발맞춰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등 제언이 쏟아지고 있긴 한다. 이장균 수석연구위원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이 적용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청하는 제품 개발을 선행해야 한다”고 했다. 한류 콘텐츠 등을 활용해 중국 소비재시장을 적극 노려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하지만 주대영 연구위원은 “AI도 결국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기술인데, 우리나라는 알파고 열풍이 불 때만 반짝 했을 뿐 이후로는 여전히 찔끔찔끔 투자만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