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9년, '로봇배우'는 위기의 연극을 구원할 수 있을까

[리뷰]'액트리스 원: 국민로봇배우 1호'
국민 배우 간병로봇의 연극 도전기
엉뚱한 상상력 속 연극 본질 질문
성수연, 능청스런 1인 다역 소화
  • 등록 2021-04-22 오후 3:10:03

    수정 2021-04-22 오후 3:17:58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2029년, 정부의 지원이 끊긴 연극은 더 이상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연극의 산실인 대학로도 수많은 소극장이 문을 닫아 관광지로 남은 지 오래다. 국립극단마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이때, 연극을 위기에서 구원할 존재가 나타난다. 로봇 ‘액트리스 원’이다.

연극 ‘액트리스 원: 국민로봇배우 1호’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지난 16일부터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 중인 연극 ‘액트리스 원: 국민로봇배우 1호’는 한국 연극의 미래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배우가 연극 무대에 오르게 된다는 엉뚱한 상상을 그럴싸하게 풀어내면서 연극의 본질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진다.

작품은 국민배우 성수연의 간병로봇 ‘액트리스 원’이 국립극단 배우 오디션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성수연으로부터 연기에 대한 정보를 고스란히 물려 받은 ‘액트리스 원’은 오디션장에서 철저한 감정 계산에 따라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을 오열과 함께 연기한다. 모두가 당황한 가운데 단 한 사람,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액트리스 원’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를 무대에 세울 방법을 강구한다.

초반부는 미래에 일어날 법한 가상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 눈길을 끈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로봇배우를 정비하고 관리할 부서를 설치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화상 전화를 걸어 예산 마련을 부탁하는 장면처럼 나름대로 디테일(?)한 미래 묘사가 웃음을 자아낸다. ‘액트리스 원’이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스태프를 시작으로 국립극단 대표 배우가 되기까지의 과정 또한 유쾌하게 펼쳐진다.

그런 가운데 작품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연기하는 ‘액트리스 원’을 통해 연기와 연극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관객에게 넌지시 질문한다. 성수연의 손녀이자 ‘액트리스 원’의 현재 주인인 성수지는 자신에게 없는 연기의 재능을 가진 ‘액트리스 원’을 바라보며 “너는 인간을 흉내 내는 것인지, 너의 연기를 하는 것인지”를 묻는다. 사람들은 ‘액트리스 원’의 뛰어난 연기에 감동하지만, ‘액트리스 원’에게 일자리를 잃은 또 다른 배우들은 그를 원망한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속에는 현재 연극이 처한 위치와 의미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연극 ‘액트리스 원: 국민로봇배우 1호’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액트리스 원: 국민로봇배우 1호’는 극작가 겸 연출가 정진새가 2018년 쓴 짧은 소설을 무대화한 것으로 2019년 신촌극장에서 초연했다. 작품에는 정부 지원 없이는 유지되기 힘든 현 연극계 상황 속에서 국가의 예산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국립극단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함께 담겨 있는데, 이를 국립극단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이번 공연만의 또 다른 재미라 할 만하다. 2019년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을 배우 성수연이 ‘액트리스 원’과 국민배우 성수연, 성수연의 조카 성수지, 국립극단 예술감독, 나아가 작품의 화자까지 능청스러운 1인 다역으로 극을 이끈다.

국립극단이 새로운 실험의 장으로 마련한 축제형 프로그램 ‘셋업 202’ 상연작으로 오는 25일까지 공연한다. 다음달 1일부터 10일까지는 같은 장소에서 속편 격인 ‘액트리스 투: 악역전문로봇배우’를 공연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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