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23일(현지시간)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200억달러(약 22조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 주에 반도체 공장 2개를 새로 짓는다고 발표했다.
인텔은 이를 통해 반도체 생산을 대폭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4개의 공장을 가동 중인 인텔은 신규 공장이 완공되면 총 6개의 반도체 공장을 갖게 된다. 신규 공장은 오는 2024년 생산을 시작할 전망이다. 인텔이 신설하는 공장 일부는 파운드리 라인으로 활용된다.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출범
인텔은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를 출범하고 다른 기업들의 반도체를 위탁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파운드리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에 직접적인 도전이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특히 겔싱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애플, 아마존, 퀄컴, 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TSMC와 삼성전자의 고객사를 뺏어오겠다는 의미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56%, 삼성전자가 18%로 예상되며 대만의 UMC와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가 각각 7%, 중국의 SMIC가 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 인텔은 2016년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했다가 2년 만에 철수한 바 있다. 그러나 파운드리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자동차용 반도체 등 공급 부족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인텔의 이번 전략은 최근 미국 조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와 맞물려 공급망 재검토를 지시한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중국과 무역 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반도체 공장을 미국 내로 옮기고, 미국을 반도체 중심 국가로 만들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인텔과 반도체 설계 역량이 뛰어난 애플,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끼리 협력한다면 이들을 고객사로 두고 있는 삼성전자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미국 내 파운드리 공장의 필요성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와 인텔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진 거라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인텔 파운드리 진출 파장 예의주시
업계에서는 인텔의 파운드리 시장 진출이 삼성전자 등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은 데이터센터에 최적화된 반도체를 자체 설계하고 인텔에 생산을 맡길 수 있을 것”이라며 “삼성전자로선 잠재적인 시장을 잠식당하는 셈이다. 기술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인텔의 계획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자체 반도체 생산도 차질을 빚고 있는 마당에 다른 기업의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인텔의 반도체 생산 기술이 14나노(nm) 수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TSMC는 현재 5나고 초미세공정까지 양산에 들어갔으며, 3나노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날 인텔은 그동안 지연돼 온 7나노 반도체가 올해 2분기쯤 설계를 마치고 2023년께 생산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안기현 상무는 “인텔이 7나노를 생산할 때면 삼성전자나 TSMC는 3나노를 하는 시기다. 인텔은 두 세대가 뒤쳐진 것”이라며 “인텔은 전에도 기술력 때문에 파운드리를 하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데, 이번엔 과연 잘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