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watch]진정성 없는 MB회고록

  • 등록 2015-02-02 오후 3:44:10

    수정 2015-02-02 오후 4:38:43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2004년 가을 어느 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회고록 ‘나의 인생’(My Life)을 들고 캐나다 토론토를 찾았다. 그의 자서전에 사인을 받기 위해 자그마치 1만여명이 모였다. 스카이돔(현 로저스 센터) 한 바퀴를 두르고도 남았다. 그의 인기는 미국을 넘어설 만큼 대단했다.

클린턴 자서전이 긍정적 평가를 받은 이유는 자신의 치부까지 가감 없이 드러낸 ‘진정성’ 때문이라고 한다. 반성해야 할 부분엔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솔직 담백함이 담겼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뤘다. 르윈스키와의 성 추문을 언급한 부분에선 “3개월 넘도록 거실 소파에서 자야 했고 이런 생활은 탄핵 과정이 끝나기 전까지 계속됐다”고 회고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출간하기 전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에 대한 반성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대선후보 시절 불거졌던 BBK 논란과 다스 실소유주 의혹, 재임 때 논란이 됐던 민간인 불법사찰과 내곡동 사저 등에 대해선 일언반구 하나 없다.

주로 자화자찬과 해명이 주를 이뤘고 때론 ‘궤변’까지 등장한다. 특히 “4대강 사업으로 금융위기를 빨리 극복했다”는 부분에선 상당수의 전문가로부터 “모든 대학의 경제학 교수가 사표 내고 MB를 스승 삼아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아냥거림까지 받았다. “MB 회고록은 변명록”(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왜 하필 지금 회고록을 출간했는지를 놓고도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 10명 중 회고록을 남긴 5명보다 MB의 회고록 출간 시점은 다소 빨랐다. 미국의 경우에도 후임 대통령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 퇴임 후 3년 이후에나 자서전을 내는 게 통상적이라고 한다.

일각에선 MB가 자원외교 국정감사를 앞두고 현 정권에 ‘경고등’을 킨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각종 민심이반 정책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폭락하자 개헌 등을 필두로 현실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상왕’(上王)을 꿈꾸는 게 아니냐는 낭설도 돈다.

청와대의 반발로 지금은 한발 물러섰지만 MB 측은 회고록 2탄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MB 측이 불가피하게 회고록 2탄을 쓴다면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는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발언을 먼저 곱씹어 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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