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바닥 드러낸 나라곳간…부자증세로 채운다

[2020년 세법개정안]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 자산소득 과세 강화
초고소득자 소득세율 인상, 자영업자 세부담 경감
"부자증세로 재정수요 충당 한계.. 보편적 증세논의 필요"
  • 등록 2020-07-22 오후 2:00:00

    수정 2020-07-22 오후 4:58:44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0 세법개정안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재부 제공
[세종=이데일리 이진철 기자] 내년부터 고소득자·자산가의 세부담이 늘어난다. 정부는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한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규모 자영업자와 취약계층의 세부담은 줄어든다. 정부가 코로나19로 구멍난 세수를 메우기 위해 부자증세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는 22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이 참석한 당정협의와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거쳐 ‘2020년 세법개정안’을 확정, 발표했다. 세법개정안은 8월12일까지 입법예고와 8월25일 국무회의를 거쳐 9월3일 이전에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기재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수요가 증대되는 가운데 경제활동 위축에 따른 세입여건상 어려움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재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1~5월 총수입은 198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7조7000억원 감소했다. 같은기간 국세수입은 전년에 비해 21조3000억원 줄어든 118조2000억원에 그쳤다. 정부 계획대비 세수를 얼마나 걷었는지 나타내는 진도율은 40.6%로 1년 전보다 6.9%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지난해 기업들의 실적 부진과 코로나19 피해 회복을 위한 세정 지원으로 세수가 덜 걷혔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2020년 세법개정안의 배경에 대해 “코로나19 피해 극복 지원, 민생안정에 최우선 방점을 두되 경제·사회의 포용·상생 강화, 조세제도 합리화도 지속 추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증권거래세 낮추고 부동산 세부담 높여

2020년 세법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2023년부터 금융투자소득을 도입해 주식형 펀드의 이익과 상장주식 양도차익을 합산하고 5000만원 이상의 수익이 나면 20%(3억원 초과분은 25%)의 양도소득세를 과세한다. 정부는 주식투자자들의 반발을 감안, 당초 계획했던 2000만원보다 기본공제액을 높게 설정했다. 현행 0.25%인 증권거래세는 2021년 0.02%p 인하하고, 2023년에 추가로 0.08%p 낮추기로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은 “2023년에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과세가 도입되더라도 증권거래세와 함께 현재보다 8000억원 이상의 세부담이 감소하게 된다”면서 “상위 2.5%를 제외한 97.5%의 대부분 주식투자자는 현재와 같이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누리면서도 증권거래세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기재부 제공
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주택보유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정부가 발표한 작년 12월16일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올해 6월17일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 이달 10일 ‘주택시장 안정 보완대책’에서 발표된 내용이 모두 반영됐다.

종합부동산세는 현행 0.5~3.2%에서 0.6~6.0%, 취득세는 1~4%에서 1~12%로 강화된다. 1년 미만 단기 보유 주택의 양도세는 40%에서 70%, 2년 미만 주택은 40%에서 60%로 오른다. 양도세 관련 주택 수를 계산할 때 분양권도 포함된다. 등록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은 3년 만에 사실상 폐지된다. 법인이 보유한 주택에 대한 세 부담도 커진다. 법인이 투기 목적으로 주택을 사지 말고 업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주택만 보유하라는 취지에서다.

서울 강남권 고가 아파트를 겨냥한 ‘똘똘한 한 채’의 세 부담도 더 커진다. 정부는 시가 9억원 넘는 1주택의 종부세 세율도 과표에 따라 0.6~3.0%로 현재보다 0.1%포인트~0.3%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1가구 1주택자의 장기보유특별공제에 거주 기간 요건을 추가해 거주하지 않을 경우 세 부담을 높이기로 했다.

정부는 그간 세금을 물리지 않던 가상화폐 차익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내년 10월부터 가상화폐로 연간 25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 개인은 초과분에 대해 20%의 세금을 내야 한다. 비거주자나 외국법인 과세를 위해 가상화폐 거래소에겐 과세자료 제출도 의무화된다.

기재부 제공
코로나19로 경제의 어려움이 커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초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에도 나선다. 과세표준 10억원 구간을 신설해 소득세 최고세율을 42%에서 45%로 인상하기로 했다. 현재 소득세는 최저 1200만원 이하(6%)에서 최고 5억원 초과(42%)로 설정됐다. 여기에 최고 구간을 새로 만들고 세율도 인상한 것이다.

기재부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과세표준이 30억원인 납세자의 경우 현재 기준으로 납부할 소득세는 12억2460만원이지만 개정안이 적용되면 12억8460만원으로 6000만원 늘어날 전망이다. 소득세율 인상 대상은 양도소득세를 제외한 근로·종합소득세 기준 1만1000명으로 전국민의 0.05% 수준으로 추산된다.

부가세 간이과세 확대, 57만명 자영업자 혜택

정부는 고소득자·자산가의 세부담을 늘리는 대신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은 강화하기로 했다.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기준 금액을 연 매출액 48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대폭 인상하고, 간이과세자 중 부가가치세를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기준금액을 연 매출액 3000만원에서 4800만원으로 인상했다. 이를 통해 57만명의 소규모 자영업자 세부담이 연간 4800억원 정도 경감될 것으로 예상했다.

기재부 제공
기재부 제공
중소기업에 해당하면 별도 요건없이 소재지·업종·규모별로 소득세 또는 법인세를 5~30% 감면해주는 중소기업특별세액감면 제도도 2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기재부는 이번 세법개정에 따른 세수효과는 676억원 증가에 그친다며 ‘증세’ 지적에 선을 그었다. 세수 증가요인은 주식양도소득 과세 확대(1조5000억원), 종부세율 인상(9000억원), 소득세율 인상(9000억원) 등이다. 반면 세수 감소요인은 증권거래세율 단계적 인하(-2조4000억원), 투자세액공제 확대(-5000억원), 부가가치세 간이과세 기준금액 대폭 상향(-5000억원) 등이다.

홍 부총리는 “세수가 늘어나는 항목도 있고 줄어드는 항목도 있는데 거의 조세중립적으로 세법개정안을 마련했다”면서 “300조원에 이르는 국세수입 규모에 비해 2021년 54억원 증가, 2021~2025년 676억원 증가에 불가하다는 점을 감안, 증세 논쟁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세법 개정안이 일부 소비 진작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인 투자 활성화나 경제활력 제고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했다. 일부 고소득층 대상으로 세금을 올리지만 실질적으로 늘어나는 재정 수요를 충당할 만큼 충분한 세수를 확보하긴 어렵다고 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세수를 늘리기보다는 국가부채로 재원을 충당하려고 하는데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 악화 추세에서 버티기는 힘들 것”이라며 “세금을 좀 더 넓은 범위에서 걷는 보편적인 증세 논의가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기재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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