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세계시민] 창립 120년 맞은 시민단체의 맏형

이희용 이데일리 다문화동포팀 자문위원
  • 등록 2023-10-23 오후 3:20:33

    수정 2023-10-23 오후 3:20:33

[이희용 이데일리 다문화동포팀 자문위원] “무명 고의적삼에 짚신을 신었고 배트를 둘러메고 볼을 친 것은 사실이나 글러브가 없어 외야수는 손으로 공을 잡아야 했다. 배트는 단 한 개를 돌려가면서 사용했다.”

1930년 4월 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한국야구사’에서 국내 최초의 야구경기를 소개한 대목이다. 1906년 3월 15일 서울 동대문 인근 훈련원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황성기독교청년회 야구단과 덕어(德語·독일어)학교 팀이 격돌했다. 황성기독교청년회는 서울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의 옛 이름이다. 1903년 10월 28일 오후 8시 서울 정동의 유니언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어 올해로 120주년을 맞는다.

창립 회원은 정회원 28명, 협동회원 9명을 합쳐 37명이었다. 회장에는 ‘춘향전’과 ‘구운몽’ 등을 영어로 옮긴 제임스 게일, 부회장에는 고종 황제 자문역 호머 헐버트가 선임됐고, 미국 예일대 YMCA 부목사로 활동하다가 파견된 필립 질레트가 초대 총무를 맡았다.

YMCA는 1844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서울YMCA는 서양 선교사들이 창립을 주도했지만 한국인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1899년 개화사상을 품은 상류층 청년 150여 명이 YMCA 세계연맹에 설립 청원서를 보냈다.

당시 양반 자제들은 하층민 신도가 대부분인 교회에 나가길 꺼렸다. 교회 대신 YMCA를 신앙과 친교 모임의 공간으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YMCA는 인사동 한옥을 임시회관으로 꾸미고 성경 공부, 목공·제화·염색·사진·인쇄 등 기술 교육, 체육 강습, 야학, 시민 강좌 등을 시작했다.

창립의 산파역인 질레트는 ‘근대 체육의 아버지’로 불릴 만했다. 야구는 물론이고 농구, 스케이트, 복싱 등 각종 서구 스포츠를 소개하고 보급했다. YMCA 창립 회원에는 외국인이 많았으나 차츰 한국 청년의 참여가 늘어났다. 특히 독립협회 지도자 윤치호와 이상재가 1905년 가세하면서 대표적인 청년단체로 부상했다.

1908년 12월에는 종로2가에 3층짜리 회관을 건립했다. 대한제국 관료 현흥택이 토지를 희사하고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가 거액을 기부했다. 고종 황제도 은삽 두 자루와 금일봉을 하사했다. 지금의 8층짜리 회관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옛 건물이 소실된 뒤 1967년 새로 지은 것이다.

YMCA는 신앙과 친교 단체에 머물지 않았다. 근대 체육의 산실일 뿐 아니라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다. 1905년과 1907년 각각 을사늑약과 고종 양위 반대운동을 펼쳤다.

일제는 한일합방 이듬해인 1911년 조선 총독 암살 미수사건을 조작한 ‘105인 사건’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윤치호·이승훈·양전백 등 YMCA 관련 인사가 중형을 선고받고 일부는 망명의 길을 떠났다.

질레트는 호러스 언더우드와 새뮤얼 모펫 등 선교사와 함께 총독부에 거세게 항의하는 한편 사건 전모를 낱낱이 기록한 보고서를 영국 국제기독교선교협회로 발송했다.

YMCA는 1919년 도쿄의 2·8 독립선언과 3·1 만세운동에서 주역을 맡았다. 해방 이후로도 청소년 활동, 소비자운동, 환경운동, 시청자 비평, 유권자 캠페인 등을 이끌며 시민운동의 요람 구실을 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서양인’으로 불리던 선교사들은 YMCA를 통해 한국 청년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려고 힘썼다. 시민단체의 맏형 격인 YMCA가 120년 전 창립 정신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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