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우' 모르는 '흑우'는 없겠지?[이연호의 신조어 나들이]

'털의 빛깔이 검은 소' 흑우, 일상 대화선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
'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 뜻하는 호구에서 유래
'블랙말랑카우', '블랙앵거스', 흑두루미' 등까지 무한 확장
  • 등록 2023-01-09 오후 4:00:00

    수정 2023-01-09 오후 7:17:01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편집자주] 언어의 특성 중 역사성이라는 것이 있다. 언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 소멸, 변화의 과정을 겪는 것을 가리켜 바로 ‘언어의 역사성’이라고 한다. 언어의 역사성에 기반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신조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매일같이 넘쳐나는 신조어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같은 신조어들이 주로 다양한 정보기술(IT) 매체를 통한 소통에 상대적으로 더욱 자유롭고 친숙한 10~20대들에 의해 주로 만들어지다 보니, 그들과 그 윗세대들 간 언어 단절 현상이 초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젊은층들은 새로운 언어를 매우 빠른 속도로 만들어 그들만의 전유물로 삼으며 세대 간 의사소통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기성세대들도 상대적으로 더 어린 세대들의 언어를 접하고 익힘으로써 서로 간의 언어 장벽을 없애 결국엔 원활한 의사소통을 꾀하자는 취지에서 연재물 ‘이연호의 신조어 나들이’를 게재한다.

흑우. 사진=언스플래시(unsplash).
◎다음 < > 속 짧은 글에서 ( ) 안에 들어가기에 적절한 말은 무엇일까요?

<1년 전 목돈이 생긴 주식 초보 형옥은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한 테마주 종목을 소개받았다. 반신반의하며 며칠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기웃거리던 형옥의 눈에 해당 종목이 사흘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사실이 들어왔다. 형옥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자신이 가진 목돈을 몽땅, 그 종목이 사흘 연속 상한가를 친 뒷날 장 시초가에 들이부었다. 장 초반 급등하던 그 종목은 장 후반 결국 급락으로 마감하고 말았고 그 같은 추세는 한동안 지속됐다. 이제나저제나 원금 회복만의 시점을 기다리던 형옥은 결국 투자금의 3분의 1도 건지지 못하고 몇 달 만에 돈을 빼고 말았다. 이 같은 얘기를 술자리에서 들은 형옥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형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따, (_) 왔는가?”>

1) 황소 2) 염소 3) 한우 4) 흑우

정답은 4번 ‘흑우’다.

먼저 흑우(黑牛)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①‘털의 빛깔이 검은 소’ ②(민속)‘제주에서, 성대하게 올리는 제사의 제물로 바치던 검은 소’ 라고 나온다. 왜 갑자기 ‘소’가 저 문맥에 어울리는 단어가 됐을까.

흑우의 사전적 의미는 물론 검은 털을 지닌 소지만, 이 단어가 위와 같은 편한 일상 대화에서 쓰인다면 그 뜻은 소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 된다. 특히 본인이 그런 말을 듣는 객체가 된 상황이라면, 본인을 비꼬는 말이니 적절한 대응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흑우는 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호구(虎口)’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흔히 ‘호구를 잡다’라는 식으로 쓰이는 바로 그 단어다. 게임 채팅창 등에서 ‘호구’라는 단어가 ‘대화 중 부적절한 단어’로 취급돼 자동으로 걸러지는 경우가 생기자 게이머들은 ‘게임에 많은 돈을 쓰는 사람들이나 잘못된 투자나 도박으로 돈을 잃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호구’ 대신 그것과 발음이 비슷한 ‘흑우’라는 단어를 차용하기 시작하면서 널리 퍼졌다. ‘흑우’는 젊은층들 사이에서 비단 게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신조어로,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도 등재된 표현이다.

다만 ‘흑우’는 직설적인 조롱인 ‘호구’ 대신 약간의 유머를 섞어 순화한 표현쯤으로 볼 수 있는 단어다. 원래 ‘호구’라는 단어의 첫 번째 뜻이 ‘호랑이의 입’이라는 점임을 고려하면, 호랑이가 소로 바뀐 것은 다소 친근감을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다. 경제 용어로 ‘현금 창출원’을 뜻하는 긍정적 단어인 캐시카우(Cash Cow)가 ‘흑우’와 같은 소에서 비롯된다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흑우’라는 단어가 유행하게 되면서 네티즌들은 ‘블랙말랑카우’, ‘블랙앵거스’, ‘블랙야크’, ‘블랙펜서’, ‘흑두루미’ 등으로 ‘흑우’와 비슷한 표현을 무한 생성 중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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