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가짜 집주인’을 내세워 허위로 전세 계약을 맺고 전세금을 가로챈 부동산 중개업자와 그 남편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 부부는 서울 송파구 일대에서 부동산을 운영해오며 일대 상인들과 교회 지인 등으로부터 100억원이 넘는 돈도 빌린 후 갚지 않고 잠적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 지난 17일 찾은 서울시 송파구의 모 부동산. 현재 문이 닫혀 있고 임대를 한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사진=권효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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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사기 혐의로 고발당한 부동산 중개 보조인 임모씨와 그의 남편 안모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는 임씨는 송파구 신천동 아파트 상가에서 부동산 중개 사무소를 운영해오며 허위로 전세 계약을 맺어 임차인들의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임씨의 사기행각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12월 피해자 정모씨는 임씨를 통해 집주인 A씨를 처음 만나 송파구 한 아파트의 전세 계약을 맺고 보증금 5억여원을 냈다. 이후 두차례 계약 갱신을 하며 거주해온 정씨는 올해 9월 모르는 이로부터 “월세가 안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고 황당했다. 집주인이라며 월세를 요구한 이는 A씨와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이었다. 임씨가 실제 집주인의 가짜 신분증을 쓰는 대역을 앞세워 정씨와 전세 계약을 맺고, 실제 집주인에겐 월세 계약을 맺였다고 속인 것이다. 임씨는 집주인 명의를 도용해 만든 통장으로 가로챈 전세금으로 월세를 처리하면서 6년간 사기를 이어왔다. 정씨는 지난달 30일 임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정씨만이 아니다. 다른 피해자인 B씨와 B씨의 장모 역시 2019년 임씨를 통해 전세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중계약임을 뒤늦게 알아채 전세금 16억여원을 떼일 처지에 놓였다. B씨는 “장모님이 10년 이상 알고 지낸 임씨를 통해 전세 계약을 맺고, 매물을 소개받아서 저도 계약을 했다”면서 “전세인 줄 알고 살다가 임대인 측 공인중개사에서 ‘왜 월세를 안내냐’는 연락을 받고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B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임씨 고소를 준비 중이다.
임씨 부부는 인근 상인들과 송파구 한 교회에서 만난 교인들, 지인들에게서 돈을 빌린 후 이를 갚지 않고 잠적한 혐의도 받고 있다. 피해금액만 총 1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임씨 가게 인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나모씨의 경우 약 13억원을 빌려주고 받지 못해 지난달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나씨는 “4~5년 알고 지낸 임씨의 남편이 부동산 개발업을 하면서 단독주택을 짓는데 돈이 모자란다며 한달 3%로 이자를 챙겨 주겠다고 했다”며 “수차례 돈을 꿔갔는데 연락이 안된다”고 했다. 실제 이데일리가 찾아가보니 해당 부동산의 문은 닫혀 있고, ‘임대 문의’ 표지가 붙어 있었다. 이 부동산은 지난달 폐업 신고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임씨 부부의 사기 행각에 당한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 피해자는 “작정한 것처럼 6~7월에 돈을 크게 빌린 후 가게 문을 닫고 사라졌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낸 뒤인 이달 초 임씨네가 이사를 간다는 소식을 듣고 쫒아가보니 돈을 떼먹힌 사람들만 열 명 가까이 와 있더라”고 토로했다. 정씨는 “서민들에게 전세 자금은 사실상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라며 “경찰이 나서서 빨리 신병을 확보하고 수사를 서둘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