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간 코로나19 감염병 상황에서 마주한 우리의 현실이다. 먼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이들을 비통하게 떠나보낸 사람들이 ‘애도와 기억의 장’에 모여 제도적 변화와 정책 대안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감염병 시기에 자유와 인권을 통제하기에만 바빴을 뿐 애도와 추모의 시간이 부족했다는 판단에서 코로나19 사망 유가족과 인권·시민단체가 한뜻으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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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정유엽 사망대책위원회 등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22일 서울시청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상황에서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지만,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추모와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며 “우리 사회에 애도와 성찰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날 영하의 날씨에 칼바람이 부는 추위 속에도 코로나19 사망 유가족과 인권·시민단체 관계자들 수십 명은 각자의 손에 한두 송이 꽃을 들고 모였다. 장례식장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흰 국화가 아닌 빨강, 노랑, 분홍색 등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꽃으로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다양한 사람을 기억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코로나19 사태는 특히 노숙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직격타였다. 황성철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작년 12월 초 한 쪽방 주민이 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했는데 감염 확산을 이유로 쪽방에서도 쫓겨났었고, 재택진료 방침에 따라 병상 부족으로 병원 근처에도 못 가보고 사망했다”며 “노숙인복지법에 근거한 복지서비스는 물론 무연고 사망자의 애도를 위한 공영장례지원조례도 방역을 이유로 작동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일반 시민도 공공의료 공백 등 코로나19 사태에서 비극을 겪었다. 2년 전 17세 아들을 떠나보낸 고(故) 정유엽군의 아버지 정성재씨는 “유엽이의 죽음을 통해 감염병 재난시기에 의료 사각지대로 공공병원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켰다”며 “단순한 의료분쟁이 아닌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를 통해 공공의료 공백을 채워 앞으로 새로운 팬데믹에도 의료공백을 만들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2년 전 쿠팡 천안물류센터 내 식당에서 근무하다 숨진 조리원의 유가족은 “아내의 사망 이후 애도와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경제적 압박은 물론 코로나19 시기라 어쩔 수 없었다며 유가족을 배려하지 않는 사측과 공단에 정신적으로 무너졌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1년 4개월 만에 겨우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는데 그간의 과정은 너무나 높은 벽 뒤에 숨은 보물찾기였다”며 “유가족이 위기에 도움을 청하는데 국가의 지원정책은 전혀 없었고, 시민사회단체의 도움으로 상담과 모금 운동 등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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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와 애도의 시간은 개인에 맡기더라도 제도적인 보완은 사회적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천 건강세상네트워크 상임활동가는 “역사적으로 감염병 위기 속에서 발생한 피해는 사회적 취약계층에 집중됐지만, 결국 사회구성원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며 “인권침해 형식이 강한 감염병 통제방식에서 개인의 인권이 우선이냐, 사회안전이 우선이냐 선택을 강요받지만, 가치 우위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공존을 위해 연대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으로 단체는 애도와 기억의 장 활동으로 △코로나19 사망자 추모·애도 공간 마련 및 기록 △국가의 제도, 법적 문제 제기와 정책 제언 △방역, 낙인과 혐오의 정치에 대한 비판과 성찰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아울러 온·오프라인에 코로나19 사망자 추모 공간을 만들고, 다음 달 5일 추모문화제를 진행하는 등 올해 말까지 활동을 전개한다.
단체는 “애도와 기억의 장을 통해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밝히고 변화가 필요한 제도와 정책을 제안할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내일로 이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