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둘 사이의 전쟁은 너무나도 큰 상처를 남겼다. 중앙화된 가상자산 거래소의 불투명성을 만천하에 드러냈고, 금융규제당국의 칼날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애꿎은 투자자들은 큰 손해를 봐야 했고, 중간선거 이후 위험자산 랠리를 기대했던 시장에도 큰 생채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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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의 과한 로비, 자오의 삐뚤어진 응징
이 사건의 발단은 지난주 수요일에 있었다. 그날 코인업계 전문 미디어인 코인데스크는 FTX 자매사인 알라메다 리서치 내부 자료를 취득해 “알라메다의 대차대조표 상당 부분이 FTX가 발행해 거래소 이용자들에게 수수료를 할인해주는 토큰인 FTT로 채워져 있다”고 보도했다. FTX와 알라메다 모두 뱅크먼 프리드를 세운 회사로, 보도대로 라면 FTX는 FTT 토큰을 발행하고, 이를 알라메다가 사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유동성이 낮은 FTT를 대부분 자산으로 가진 알라메다는 재무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에 캐롤라인 앨리슨 알라메다 CEO는 “코인데스크가 취득한 재무제표는 알라메다 자산 중 일부만 나와 있는 것이고, 6월30일자로 해당 재무제표에 있는 부채는 상당 부분 갚았다”고 해명했지만, 사태는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고, 6일부턴 트위터 상에 FTX가 파산할 수도 있다는 루머들이 나돌았다. 이 때 NBC에서 가상자산 투자를 자문하는 랜 노이어가 자기 트위터에 “(투자자들은) FTX에서 자금을 빼야 한다”는 글을 올리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이후 뱅크먼 프리드가 나서 파산설에 대해 “근거 없는 루머일뿐”이라고 일축했지만, 곧바로 자오창펑 CEO가 자신이 보유한 FTT 전량을 청산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 작년 바이낸스는 2019년부터 FTX에 투자했던 초기 지분을 엑시트했고, 이 과정에서 FTT와 바이낸스 스테이블코인 BUSD 등으로 약 21억달러를 받았다.
자오 CEO는 최근 약세장 흐름이나 시장 내 FTT의 제한적인 유동성으로 인해 이를 다 처분하려면 수 개월이 걸릴 것이라며 “FTT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처분하겠다”고 했지만, 그 자체로 FTT 가격은 추락하고 FTX 거래소에서의 자금 인출은 속도가 붙었다. 후에 “경쟁자(FTX)를 해를 끼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 차원일뿐”이라고 했지만, FTX와 뱅크먼 프리드의 이름만 거론하지 않았지 “뒤에서 로비하는 사람을 지지하지 않는다”거나 “경쟁자가 미국 의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는 식으로 사실상 FTX를 겨냥하기도 했다. 뱅크먼 프리드는 이번 중간선거에 정치 후원금을 가장 많이 낸 미국 기업인 10위 내에 이름을 올렸는데, 최근엔 코인업계 주요 수익원인 디파이(탈중앙화금융)에 대한 당국 규제를 옹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사흘 새 8조원 뱅크런 사태, 백기 든 프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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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게 되자 FTX는 알라메다가 송금해 준 스테이블코인과 이더리움으로 자금을 빼내는 고객들에 대응했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전날 밤 뱅크먼 프리드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최근 72시간 동안 출금된 예치금만 8조원에 이른다”고 고백했고, 이후 월가 투자자들에게 10억달러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요청한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간밤 자오와 뱅크먼 프리드는 나란히 트위터에 “바이낸스가 FTX 미국법인을 제외한 나머지 FTX 자산을 이수하기로 구속력 없는 인수의향서(LOI)를 체결했다”고 밝히면서 사태를 일단락됐다. 회사 매각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쓴 FTX는 거래소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코인 출금을 중단한 상태다.
알라메다부터 솔라나·타이거글로벌 등에 불똥
문제는 이번 사태가 FTX와 뱅크먼 프리드에만 치명타를 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서로 얽혀 있는 코인업계의 특성상 불똥은 여기저기로 번져갔다.
우선 자매회사라는 이유로 FTX에 유동성을 수혈해 준 알라메다는 보유하고 있던 FTT 가격이 70% 이상 추락하면서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두쥔 후오비 창업주는 “FTX가 지난주 60억달러 이상 유동성을 인출했는데, 이 과정에서 알라메다에 대출해 준 회사들과 FTX가 인출한 중앙화 플랫폼이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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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X 초기 투자자인 코인업계 대표 벤처캐피탈인 타이거글로벌도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판이다. FTX가 지분 투자를 한 무료 자산투자 플랫폼인 로빈후드도 이날 주가가 19%나 폭락했다. 미국 1위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도 FTX와의 관련성이 의심 받으며 주가가 11% 급락했는데, 나중에 회사는 “사업상 1500만달러 정도 FTX에 예치금을 넣은 것 외엔 아무 관련이 없으며, 우리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명해야 했다.
중간선거 랠리 기대 꺾여…“아직 바닥 멀었다”
상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뱅크먼 프리드의 ‘코인 제국’이 보여준 이 업계의 불투명성이 이번 사태로 그 민낯을 드러낸 만큼 시장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코너 라이더 카이코 애널리스트도 “사건의 발단이야 어쨌든 간에, FTX와 알라메다가 준비금을 둘러싼 둘 간의 불투명한 연결고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이 사태를 키운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로 인해 규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단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티볼트 슈레벨 블록체인 법률전문가도 “바이낸스가 FTX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유동성 위기를 조장하고 그 결과 불법적인 합의를 한 것일 수 있는 만큼 인수까지는 여러 법적 검토가 따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로 인해 잔뜩 중간선거 이후 랠리를 기대했던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안긴 점이다. 간밤 비트코인 가격은 1만7600달러까지 추락하며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아서 헤이즈 비트멕스 창업주는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봐도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시점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바닥이 아니었다”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더 떨어질 수 있으며, 그나마 이번에 하락하면 진정한 바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임 아슬람 아바트레이드 애널리스트도 “FTT에 대한 매도공세가 업계 전체를 취약하게 만들 수 있고, 만약 그 여파가 더 확산된다면 시장 전체에 대규모 폭발이 있을 수도 있다”며 비트코인 가격이 1만5000달러까지 더 떨어질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