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양도인이 사후적 사정을 이유로 계약을 불이행한 경우라도,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 민사법적으로 해결하면 되고 별도로 형사처벌까지 받을 사안은 아니라는 취지다. 채권양도인이 수령한 금전을 임의로 처분한 경우엔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판례였지만 이번 선고로 판례가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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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3년 인천 남구의 한 건물에서 본인이 운영하던 식당 점포를 부동산 중개업자를 통해 B씨에게 양도했다. A씨는 식당 점포와 순창군 토지, 500만원을 교환하는 조건의 교환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에는 식당 점포에 관한 임차 보증금 채권 양도가 포함됐다.
이후 A씨와 B씨는 토지의 시가 차이로 인해 교환 대상 토지를 순창군 토지에서 안동시 토지로 변경하는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이 사건은 채권양도인이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받아 수령한 금전에 대해 횡령죄의 구성요건인 재물의 타인성과 보관자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형법 355조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빼돌리거나 반환을 거부한 경우를 횡령죄로 규정한다. 죄가 성립하려면 재물이 ‘타인의 것’이어야 하고 피의자가 ‘보관하는 자’의 지위여야 한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A씨가 건물주에게 채권 양도 사실을 알리지 않은 만큼 보증금의 소유권이 여전히 A씨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A씨가 그 돈을 다 써버렸다 해도 횡령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A씨가 보증금 채권을 넘긴 사실을 건물주에게 알리지 않은 건 민사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편 조재연·민유숙·이동원·노태악 대법관은 횡령죄 성립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양도인이 채권 양도 통지를 하기 전에 채권을 추심해 금전을 수령한 경우 원칙적으로 그 금전은 양수인을 위해 수령한 것으로 양수인의 소유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계약 불이행을 형사법상 범죄로 확대해석하는 것을 제한해 온 횡령·배임죄에 관한 대법원 판례의 흐름을 반영했다”며 “채권 양도 영역에서도 횡령죄의 구성 요건인 재물의 타인성과 보관자 지위를 엄격하게 해석함으로써 죄형 법정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태도를 강화하는 입장을 취한 판결”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