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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부’ 몰락 위기의 조짐은 지난 2017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법원이 판사들의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 행사 저지를 거부한 한 판사에게 인사상 불이익 처분을 했다는 의혹이 언론 보도를 통해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블랙리스트 의혹 수준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이 △2017년 4월 진상조사위(1차) △2018년 1월 추가 조사위(2차) △2018년 5월 특별조사단(3차) 등 세 차례에 걸쳐 자체 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재판 개입’ 의혹이 불거졌다. 대법원은 3차 조사에서도 “일부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가 있지만 조직적인 법관 사찰과 인사 불이익은 없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또 안철상 전 법원행정처장은 ‘재판거래’는 없다는 입장을 국회에서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양 전 원장 역시 경기 성남시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를 열고 재판거래와 블랙리스트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법원 안팎의 진실규명에 대한 문제기가 이어졌고 시민단체의 고발과 김명수 대법원장의 수사 협조 선언으로 지난해 6월 검찰의 본격 수사가 시작됐다.
결정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개입 의혹이었다.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던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일본 기업이 제기한 재상고심이 진행되는 동안 관련 소송의 지연과 다른 결과를 원했던 박근혜 정부와 거래를 했다는 게 핵심이다.
실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양 전 원장은 강제징용 재판 진행과 관련해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내부 상황을 2015년 당시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송무팀 소속 한모 변호사를 수차례 만나 전달한 정황이 드러났다. 또 관련 소송의 재상고심 주심인 김용덕(62) 전 대법관에게 “판결이 확정되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가 진행될 수록 검찰의 칼끝은 양 전 원장에게 향했다. 검찰은 양 전 원장이 사법농단 사태에서 단순히 보고 받은 공범이 아니라 실제 지시하고 실행한 주범으로 결론내렸다.
지난 11일 헌정 사상 처음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데 이어 총 3차례, 약 27시간 정도 조사 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실무진이 한 일이다”는 등 사실상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태도로 일관하자 검찰은 사안의 위중함과 증거인멸 우려 등을 고려, 18일 오후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