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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법무부에 따르면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사건 중재 판정부는 이날 한국 정부에 론스타가 요구한 배상금액(46억8000만 달러)의 약 4.6%인 2억165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명했다. 원·달러 환율 1300원을 적용하면 우리 돈으로 약 2800억원에 해당하며 여기에 지연손해금 185억원을 더하면 정부의 배상금액은 약 3000억원 정도로 계산된다.
이번 분쟁의 핵심 쟁점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이 한차례 무산되고 뒤늦게 이뤄지는 과정에 한국 정부의 책임이 있느냐였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3834억원에 사들인 뒤 여러 회사와 매각 협상을 벌이다가 2012년 하나금융지주(086790)에 3조9157억원에 되팔았다.
론스타는 매각 과정에서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이익금이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2007∼2008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매각 협상 과정에서 금융위원회가 규정된 심사 기간 내에 승인 여부를 결정하지 않아 매각이 무산됐고, 이후 하나금융지주에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매각해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또 2011∼2012년 하나금융과의 협상 과정에서도 정부가 승인을 지연하고, 매각 가격을 인하하도록 부당하게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정부가 매각 가격이 인하될 때까지 승인을 지연한 것은 공정·공평 대우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론스타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다만 판정부 소수의견은 승인 심사 지연 책임은 전적으로 ‘주가조작 의혹’을 일으킨 론스타에 있으므로 우리 정부의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이외 대부분 쟁점에서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인용됐다. 중재판정부는 2011년 ‘한-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이 발효된 2011년 3월 이전의 정부 조치 및 행위에 대해서는 관할이 없다고 봤다. 일부 관할이 있는 조세 청구의 경우도 우리 정부의 과세처분에 투자보장 협정상 자의적·차별적 대우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미래에 부과될 세금까지 고려한 론스타 측 청구 액수도 기각하면서 실제 배상금액은 청구액의 4.6%로 대폭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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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우리 정부에 책임이 전혀 없다고 판단한 소수의견에 주목해 ‘완전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판정 취소신청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단 방침이다. 한창완 법무부 국제분쟁대응과장은 이날 ISDS 판정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가 어떤 사유로 취소 신청을 할 것인지는 소송적인 문제여서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취소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사자 중 한쪽이 판정 취소를 신청하면 ICSID는 취소위원회를 구성하고 판단에 절차적 하자 및 중재판정부의 관할권 문제 등 취소사유가 있는지에 대해 심사한다. 다만 취소신청은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는 것이 아닌 만큼 결론이 뒤집히는 사례는 흔치 않으며, 실제 지난 10년간 이뤄진 판정 취소 신청 사건 중 연평균 약 10%가 받아들여졌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취소 신청을 진행할 경우 배상금 지급 집행정지를 함께 신청할 수 있어 결론이 날 때까지 배상금 지급을 미룰 수 있다. 취소 신청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최소 1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취소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집행정지 기간이 늘어난 만큼의 추가 지연이자도 함께 배상해야 한다.
한편 법조계 일각에서는 판정 취소신청 결과와는 별개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관련 승인에 관여했던 전·현직 관료들이 도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상갑 법무부 법무실장은 사건 책임자 등에 대한 구상권 청구가 가능한지를 묻는 질문에 “‘승인 지연 부분’ 내지는 ‘매각금액을 인하하도록 했다는 부분’이 우리 정부의 책임발생 근거가 된다”며 “그와 관련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지는 일단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