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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지난 10월 어느날 출근길, 아내의 우울한 문자를 받았다. “XX네 단지 아파트가 요즘 9억원에 팔린다네.” 순간 눈을 의심했다.
XX씨는 아내의 지인이다. 5년 전 XX씨는 서울 시내에 위치한 20평대 브랜드 아파트를 4억원 중반대에 무리해서 샀다. 2억원 이상 대출을 끼고서다. 그때 전셋집을 구한 우리 부부는 “간도 크다”고 놀라워했고, 그 부부는 “빚 갚느라 힘들다”고 토로했다.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4억5000만원에서 9억원. 5년간 정확히 두 배 올랐다. 1년에 1억원꼴.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봐도, 월급 모아서는 만질 수 없는 돈이다. 솔직히 부러웠고,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웠다.
지난 7월 즈음으로 기억한다. 지급결제 쪽에 밝은 한 고위당국자에게 “도대체 비트코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인사는 대뜸 “김기자, 공부하는 셈치고 하나 사봐”라고 권유했다. 그때 가격이 100만원 정도였다. 그 뒤는 우리가 봤던 그대로다. 이번달 초 2500만원까지 치솟았다. 그때 당시 “뭐 그런 걸 100만원씩이나 주고 사냐”며 콧방귀를 뀌었던 게 지금도 후회된다.
비트코인 광풍(狂風)은 우리나라가 유독 심하다고 한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만큼 비트코인에 빠진 나라는 없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도 “전세계에서 투자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은 한국”이라고 했다.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에 돈이 많이 풀린 건 어느 나라나 똑같은데, 왜 그럴까. 기자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탐욕(greed)이 스멀스멀 자라고 있다는 걱정이 든다. 1억원짜리 집이 반 년도 안 돼 25억원까지 올랐다면, 이건 상식적인 투자라고 볼 수 있는가.
대공황 직전에는 어땠을까. 미국의 1920년대는 마치 축제 같았다. 주식시장에서, 부동산시장에서 돈을 벌고 또 벌었다. 그 돈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따지고 보면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버블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똑같았다. 그 이면에는 이성을 흐리는 탐욕이 자리했다. 돈이 돈을 버는데, 합리성이 자리할 곳이라고는 없었다.
이제 새해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의 말마따나 우리 사회에 ‘비이성적 과열’은 없는지 찬찬히 곱씹어볼 때다. 신기루 같은 투기판의 끝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