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환투기 잡겠다" vs 기관 "우리가 다친다"

NDF 시장 규제 "실효성 논란"..외환시장 혼란
재경부-한은 불협화음설 "솔솔"
  • 등록 2004-01-19 오후 9:42:53

    수정 2004-01-19 오후 9:42:53

[edaily 강종구기자] 정부가 역외세력의 환투기에 의한 원화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 대한 규제조치를 연이어 발표하면서 외환시장이 혼란에 휩싸였다. 국내 금융기관 등 시장 참여자들은 정부의 규제조치가 "환투기세력이 아닌 국내 기관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에 반해 규제방침을 마련한 재경부는 문제될 것이 없으며 시장의 반응이 오히려 과장됐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규제내용: 달러선물 매수 말고, 달러현물 매도 말라 재경부는 19일 원화가치 상승을 노린 환투기를 막기 위한 NDF 규제의 세부 지침을 발표했다. 재경부는 지난 15일 국내 금융기관의 매입초과포지션을 제한하기로 한데 이어 형평성 차원에서 매각초과포지션도 똑같이 제한하기로 규정을 보완했고 유로나 엔화 등 달러이외의 통화에 대해서도 똑같이 규제키로 했다. NDF 시장에서 역외 세력이 투기적으로 달러 매도에 나서는 것을 국내 금융기관이 다 받아주면 현물시장에서 달러가치 하락-원화가치 상승을 유발할 수 있으니 국내 금융기관의 거래를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예를 들어 NDF 시장에서 달러 선물환을 매입초과(달러부채가 달러자산보다 많은 상태)하면 환위험에 노출된 해당 금융기관은 헤지를 위해 현물시장에서 달러를 팔아야 하고 이는 환율 하락(원화값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재경부는 지난 15일 국내 금융기관의 매입초과포지션을 14일 기준에서 10% 이상 늘리지 못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재경부는 국내 금융기관의 매각초과포지션에 대해서도 16일 기준 90% 이상을 유지하라는 제한을 가했다. 예를 들어 16일 현재 달러 선물환 매도가 매입보다 5억달러 많다면 이를 4억5000만달러 이하로 낮추지 말라는 뜻이 된다. 국내 금융기관이 NDF시장에서 매각초과포지션을 취하게 되면 현물시장에서는 환위험을 없애기 위해 달러를 매수해야 한다. 결국 현물시장에서 달러를 매수해야 하는 위치, 즉 원화값을 떨어뜨릴 수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라는 의미가 된다. 재경부는 실제로 시장을 조사해 보니 국내 금융기관중에 매입초과가 아닌 매각초과포지션인 경우가 발견됐다며 이 같은 규정을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국내기관: 환투기 노린 화살, 우리가 맞는다 규제 세부지침이 발표되자 매각초과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매각초과포지션을 90%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역외세력이 달러 선물환을 싸게 사겠다고 나왔을 때도 울며 겨자먹기로 이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매입초과를 한 기관들의 경우에도 통상 1개월마다 돌아오는 만기에 포지션을 정리하고 나면(매입초과가 아닌 상태가 되면) 외국인의 달러 선물환 매도에 응할 수 있는 여유가 커져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매각초과의 경우에도 만기때 포지션을 정리하고 나면 16일 기준으로 90%까지 매각포지션을 취해야 한다. 한 선물사 애널리스트는 "재경부의 조치는 오히려 역외 투기세력을 도와주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며 "외국인이 NDF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고 국내금융기관들이 끌려다니면서 환율 하락을 부추길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부: 감기는 몰라도 폐렴까지는 안간다 이에 대해 재경부 관계자는 "금융기관들이 자기 이익만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불만"이라고 일축했다. 한도를 맞출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는데 당장 손해를 볼 것 같으니 볼멘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국내 금융기관의 어려운 부분을 모르는 바 아니다"면서도 "이를 고려하기는 했지만 규제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매입포지션이나 매도포지션 자체가 아니라 초과포지션을 규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격이 그 정도로 심하지 않다"며 "매도초과의 경우에는 만기가 오면 매도포지션 부분을 롤오버(만기연장)하고 매입포지션 부분을 정리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본적으로 역외세력이라고 투기세력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실수요도 많이 있으며 이들은 매수쪽이다"며 "또 규제를 다음달 19일까지 한달간 유예해 주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장: 재경부 독주에 한은 삐쳤나 한편 NDF 규제 세부지침과 관련해 관계 당국인 재경부와 한국은행 사이에 의견 불일치로 인한 불협화음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날 오전 한은이 발표할 것으로 보였던 규제 세부지침이 오후 발표로 넘어가고 발표도 재경부에서 하게 되자 시장에서는 한은이 일부 항목에 대해 반대한 것이 아니냐고 관측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한은 고위 관계자는 "발표랄 것이 있나. 각 은행에 조금씩 다르게 내려갈 것"이라고 말해 한은측이 국내 금융기관에 통보하는 방식이 될 것을 시사했으나 결국 재경부가 발표하는 방식이 됐다. 한은의 다른 관계자도 "규제조치 내용은 재경부에서 전부 마련한 것"이라고 말해 묘한 뒷맛을 남겼다. 이에 대해 재경부 관계자는 "한은이 규제내용을 모를리 있나. 충분한 협의를 거쳤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내 은행의 한 딜러는 "합의와 협의는 뜻이 다르다"며 "협의는 했으되 규제조치의 내용은 재경부 뜻에 따라 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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