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이정훈기자] `특단의 대책`을 강조했던 정부의 부동산 종합대책이 발표되던 날 아침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콜금리 인상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발언을 내놓았다.
경기와 부동산 사이에서 손발이 묶였던 한국은행으로서는 부동산시장이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내려놓고 이제는 경기쪽만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승총재 `금리인상 고려안한다` 거듭 확인
29일 오전 박승 총재는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민생점검회의 참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금리 인상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향후 경기가 가장 중요한데, 지금은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김진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금리인상은 전혀 아니다"면서 `올해는 금리를 동결하느냐`는 추가 질문에 "박승 총재가 결정할 일"이라며 박 총재의 발언에 힘을 실어줬다.
물론 이같은 박 총재의 발언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9일 열린 금통위 이후에도 "금리를 인상할 경우 현 경기 침체와 실업문제가 더 악화되는 부담이 있고, 환율이 내려가고 있어 이를 더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저금리가 부동산 투기의 여러가지 원인중 하나라는 점을 알고 있고 이 때문에 응분의 책임도 느낀다"며 "그러나 일부 지역의 부동산가격 상승을 거시경제정책 수단인 금리 조정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금리 인상은 부동산 문제보다는 경기 회복 여부에 달려있음을 강조했다.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는 날 금리 인상 불가론을 거듭 확인한 박 총재의 발언은 혹자가 지적하듯이 `부동산 대책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문제의 부담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동산 부담을 벗고..`이제는 경기만 본다`
지난 금통위에서 박승 총재는 "현재는 콜금리를 내려도 경기부양 효과가 크지 않고 금리를 올려도 부동산시장 안정 효과가 없는 특수한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이같은 고민은 "콜금리를 내려도 경기부양 효과가 없다", "콜금리를 내려 부동산 투기만 부추겼다"는 시중의 숱한 비난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이날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의 실효성은 차치하고라도 한은으로서는 정부의 부동산 안정의지를 믿고 이제는 `경기`만 바라보고 통화정책을 펴나갈 수 있게 됐다.
한은 관계자는 "이날 종합대책에는 2단계 대책까지 포함된 만큼 일단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며 "그럴 경우 한은으로서도 금리정책을 사용하는데 한결 자유로워질 것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침 박 총재의 발언 역시 이런 관점에서 나온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금리정책 어려움 `여전`..인하 가능성도 배제못해
부동산이라는 `짐`을 덜어낸다해도 한국은행으로서는 금리정책에 어려움이 여전하다. `4분기 경기 회복`을 주장해 온 한은으로서는 추가적인 금리 인하를 접어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여건은 그다지 녹록치 않다.
대외여건이 좋은데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산업생산이나 경상수지 등에서는 `희망의 빛`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나머지 한 축이 돼야할 내수 부분은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9월 산업활동동향에서도 산업생산은 전년동월대비 6.6% 전월대비 2.9% 증가했지만, 재고는 증가폭을 확대했고 도소매 판매 감소세도 이어졌다. 내수용 소비재 출하도 6.2% 감소했고, 설비투자는 2.3% 줄어 석 달째 감소세를 이어갔다.
또 올해 연간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한은이 당초 예상한 20억달러보다 5배에 이르는 100억달러까지로 예상되는 상황인 만큼 미국 경상수지 적자 해소를 위해 아시아 국가들이 수출을 줄이는 대신 내수를 살리는 쪽으로 통화정책을 펴나가야할 당위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아직 기조적인 움직임이 바뀌지 않은 달러/원환율 동향도 금리 인상보다는 인하쪽에 좀더 무게를 실어주는 요인중 하나다.
◇부동산 대책 이후..`유동성 죄기` 다시 나설수도
부동산 대책 이후 대출 수요가 줄어들 경우 은행권의 자금이 풍부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한은은 유동성을 흡수하는 방향으로 나올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이 대출 위축으로 자금 여유가 생기면 금리가 하락할 것이고, 목표수준 유지를 위해 유동성을 묶어야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 관계자는 "이 경우 RP 매각이 증가하고 통안채 발행규모도 늘어날 수 있다"며 "결국 일상적인 한은의 유동성 조절을 통해 금융권 자금이 늘어나는 부분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다른 관계자는 "일부 남는 자금이 있다면 은행이 다른 투자처를 모색하기도 하겠지만, 은행의 대출이 줄어들 경우 자연스럽게 예금이 줄어들면서 기관의 여유 유동성도 줄어들게 마련"이라며 인위적 유동성 죄기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