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과도한 피의사실 유출이 부른 비극

  • 등록 2023-12-28 오후 4:19:34

    수정 2023-12-28 오후 7:28:28

[인천=이데일리 이종일 기자] 톱배우 이선균씨(48)가 마약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숨졌다. 이씨 사망과 관련해 경찰은 강압수사를 부인했지만 마약사건 수사 내용이 외부로 알려지며 이씨의 부담감이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또 가로세로연구소 등이 이씨 사망 전 유튜브에서 이씨와 강남 유흥업소 실장 A씨(29·여)의 전화통화 녹취파일을 공개해 이씨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이 나온다.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故) 이선균씨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 = 뉴시스 제공)
이씨에 대한 경찰 수사가 언론을 통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10월19일이었다. 당시 경찰과 언론은 이선균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유명 배우’ 등의 표현으로 입건 전 조사(내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일부 언론에서 이선균 실명으로 마약사건이 보도됐고 날이 갈수록 경찰 수사 내용은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점점 더 많이 공개됐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인천경찰청에서는 광역수사대장이 언론 대응을 맡아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을 근거로 오보 대응 등 이씨 사건의 최소 사항을 공개했다.

이 규칙에 따르면 사건 관계인의 명예, 사생활 비밀 등 인권을 보호하고 수사 보안 유지를 위해 법령 등에 따라 공개가 허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의사실, 수사상황 등을 공개해서는 안된다.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로 인해 사건 관계인의 인권이 침해되거나 경찰관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 명백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으면 예외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

광수대장은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에서 피의사실 공표죄를 언급하며 말을 아꼈지만 이씨 수사 사항은 연일 언론에 보도됐다. 일각에서는 광수대장 외에 다른 경찰관이 피의사실(의심을 받고 있는 사항)을 비공식적으로 언론에 흘렸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인천경찰청은 수시로 수사 사항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보고하고 있어 수사 정보가 샐 여지도 있다.

이씨의 마약투약 혐의는 의심이 있는 것이지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씨가 빨대를 이용해 케타민 가루를 흡입하는 것을 봤다”는 A씨의 경찰 진술이 보도되고 이씨와 A씨의 전화통화 녹취파일이 유튜브에 공개되며 이씨의 혐의는 사실처럼 비치게 됐다. 수사 사항과 사생활이 과도하게 공개돼 이씨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결국 안타까운 죽음으로 이어졌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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