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항공산업이 붕괴 위기에 처한 가운데 항공업계 노동조합이 정부에 이처럼 신속한 금융 지원을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 연맹과 전국연합 노동조합연맹 소속 30여명은 14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책은행을 통한 금융지원, 시중은행에 대한 대출 보증, 세금 감면, 임금보조금 지급 등 현재 위기 상황에서 항공사들이 버텨낼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항공산업 지상조업협력사 고용안정 보장 및 지원금 상향 △전국 공항지역을 특별고용지원업종 또는 고용위기지역으로 선정 촉구 △이스타항공 오너일가의 경영부실 책임 및 직원 고용안정 촉구 등도 주장했다.
대한민국 조종사 노조 연맹은 대한항공(003490) 조종사 노조, 아시아나항공(020560) 조종사 노조, 아시아나 열린조종사 노조, 에어부산(298690) 조종사 노조,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 제주항공(089590) 조종사 노조, 진에어(272450) 노조 등 국적 항공사 7개 노조가 모여 만든 단체다. 전국연합 노조연맹은 지상조업사인 한국공항 노조, 월드유니텍 노조, EK맨파워 노조, 케이텍 노조 등 지상조업 4개 노조 참여하고 있다.
최현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위원장은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는 적자가 불가피하지만, 감염 확산방지라는 정부 정책에 따라 해외 여행 자제령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동참했다”며 “국가 정책에는 후속대책이 필요한데 항공업계가 도미노식 도산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정부는 필수 공익 사업장의 폐업을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한태웅 대한민국조종사연맹 준비위원장(에어부산 조종사 노조 위원장)은 “항공·공항 산업은 직접고용 8만여명, 연관 종사자 25만여명에 달하는 국가 기간산업이며 인천공항의 발전과 함께 우리나라 경제의 한 축으로 성장해왔다”며 “하지만 최근 인천공항은 이용객이 95% 이상 감소해 공항이 아닌 항공기 주기장 역할을 하는 처지가 됐고 각 항공사는 적자에 허덕이며 전 직원 순환휴직을 실시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어 우리나라 항공안전도 우려했다. 한 위원장은 “항공산업은 수많은 직종과 업무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어 한 항공사의 도산은 직접 고용된 직원들만의 문제가 아닌 해당 항공사와 계약된 수많은 조업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해당 조업사의 하청 업체까지 줄 도산을 일으키게 된다”며 “항공 전문가들을 양성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며, 이들의 고용안정이 위협받을 때 우리나라의 항공안전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지상조업 협력사까지 ‘특별고용지원업종’ 적용”
항공사뿐만 아니라 항공기 운항 중단으로 힘들어하는 공항 지역의 모든 조업사까지 정부 지원을 확대해 붕괴 직전의 항공산업 전반을 지켜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조상훈 한국공항 노동조합 위원장은 “원청인 대형 항공사는 ‘유급’으로 휴업·휴직을 진행하고 있으나 항공산업 중에서도 특히 경영환경이 열악한 하청업체(지상조업사, 지상조업협력사)들은 대형항공사와 비교하면 제대로 된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급’으로 휴직·휴가를 가고 있는 상황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노동조합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항공산업 협력업체들은 이미 사측의 요구로 부당해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위법한 무급휴직·무급휴가를 강요 받고 있다.
조 위원장은 “장기간 경기침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상조업사와 협력업체까지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달라”며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신속하게 전국 공항지역의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고 공항 노동자에 대한 해고 요건을 강화하는 ‘해고제한법’을 도입해달라”고 요구했다.
|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저비용항공사(LCC) 이스타항공에 대한 지원 대책 마련도 호소했다. 이스타항공은 한 달간 ‘셧다운’에 돌입한 데 이어 전체 직원의 18% 수준인 300명 내외의 인력을 구조조정하기 위해 현재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유동성 위기로 임직원 2월 급여는 40%만 지급했으며, 3월 급여는 체불했다.
공정대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이스타항공의 실질적인 오너는 총선에 출마하고, 오너 가족은 지분 매각으로 현금을 챙기며, 정부는 대출을 막고 구조조정을 부추기고, 아무 잘못 없는 직원들만 회사에서 쫓겨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오너 일가의 책임 있는 모습을 요구했다.
이에 이스타항공은 정부의 조건 없는 지원도 촉구했다. 공 부위원장은 “모든 항공사에 공평하고 합리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정부가 나서서 자구노력을 하라는 것은 결국 항공사로 하여금 구조조정을 하라는 압박으로 지금은 정부가 조건 없이 모든 항공사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
조종사 자격 유지 조건의 한시적 완화 요구도 포함됐다. 조종사들은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국토부 고시 운항기술기준에 따라 직급별, 기종별 비행 경험과 훈련에 따라 자격유지를 하고 있다. 항공업계는 만약 휴업이 5월을 넘겨 장기화하면 상당수의 조종사들이 자격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용곤 아시아나 조종사 노동조합 위원장은 “아랍에미리트(UAE)도 에미레이트 항공사 조종사의 자격 유지 조건을 4개월간 자동 연장하는 정책을 시행했다”며 “국토교통부는 항공사별 휴업 상황과 전망, 훈련 장비 현황 등을 전수 조사해 미래에 닥쳐올 조종사들의 대량 자격상실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부분의 국제선 운항이 중단된 가운데 특히 미국과 유럽 등 장거리 노선에 투입하는 대형 기종인 A380의 노선 투입이 배제돼 해당 기종 조종사의 경우 운항 자격 유지가 어려워진 상태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A380 조종사는 대한항공 250여명, 아시아나항공 160여명 등 400여명 수준이다. A380 기종은 3개월마다 훈련을 통해 조종사 자격유지가 필요하다.
김정남 아시아나 열린조종사 노동조합 위원장은 “최근 항공사 휴업사태가 장기화하고 해외 입국이 불가해 지면서 아시아나항공 A380 기종 조종사들은 태국 방콕에서 진행했던 모의훈련장비(시뮬레이터)를 통한 훈련이 불가능해졌다”며 “대한항공은 시뮬레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시아나항공 A380 기종과 엔진 등 시스템이 달라 공유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청와대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개서한을 전달했다. 이날 오후 3시에 열리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항공분야 회의에도 참여해 대응책 마련을 호소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