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된 사회일수록 엔터테인먼트는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과 놀이가 분리된 현대에 엔터테인먼트는 하나의 산업이 된다. 시장 규모와 이윤율이 날로 커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불꽃 튀는 싸움터가 된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대중문화계도 몰라보게 기업화되고 치열해졌다.
이런 변화는 2006년에 나온 영화 ‘라디오 스타’에 잘 나타나 있다. 매니저 박민수(안성기 분)는 인기를 잃고 골칫덩이가 된 1988년 가수왕 출신 왕년의 스타 최곤(박중훈 분)을 버리지 않고 친동생처럼 보살핀다. 박민수가 마련해준 영월 라디오 디제이 자리에 앉은 최곤이 좌충우돌 끝에 인기를 되찾자 서울의 기업형 연예기획사 임원이 찾아온다. 그는 최곤에게 좋은 계약을 제시하며 다시 꽃길만 걷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조건을 하나 내건다. 친형 같지만 구닥다리 매니저 박민수와 관계를 끊으라는…. 그 장면을 보노라면 합리적이지만 얼음장 같은 그 임원의 눈빛에 등이 싸늘해진다.
고민하던 최곤은 의리파 박민수를 버리지 않았지만, 2016년 현재 기업형 연예기획사는 연예 지망생이라면 꼭 들어가고 싶은 꿈의 직장이다. 스타를 만들어 띄우는 기획사와 계약을 맺지 않고서는 타고난 인재도 대중의 눈에 띄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연예계는 막연한 감과 의리가 아닌 철저한 기획과 타산이 지배한다.
‘프로듀스 101’이 금요일마다 케이블 방송 시청률 기록을 경신하며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에 우연히 이 프로그램을 본 필자는 홀린 듯 ‘입덕’해서 모임 날짜를 금요일 저녁으로 잡은 고교 동창을 핀잔할 경지에 이르렀다. 이렇게 ‘프로듀스 101’에 빠져들고 그 결과물인 프로젝트 걸그룹 I.O.I의 행보에 일희일비하는 팬은 특정 연령대와 성별에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I.O.I의 팬덤은 퍽 강하며, 최종 11위 안에 아깝게 들지 못한 연습생들로 결성된 파생 그룹 C.I.V.A와 I.B.I의 인기몰이도 무서울 정도다.
대중은 기성품으로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툭 나오는 걸그룹보다 완제품이 되는 과정이 공개되는 걸그룹에 더 환호한다. 이 추이를 포착해 극대화한 프로그램이 바로 ‘프로듀스 101’이었고, 이 전략은 대박을 터뜨렸다. 하나같이 다 데뷔가 절실한 연습생 101명을 넉 달 가까이 경쟁에 몰아넣어 90명을 차근차근 떨어뜨리고 최종 승자 11명을 추려내는 프로그램 포맷은 무척 비정했다.
‘프로듀스 101’ 시즌 2, 시즌 3이 시청자를 기다린다. 성공을 꿈꾸는 연습생은 더 많이 몰려들어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격려할 것이다. 향후 ‘프로듀스 101’의 성공은 그런 모습을 더 잘 잡아낼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류한수 상명대 유럽현대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