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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민사합의33부(재판장 구회근)는 23일 이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항소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고 일본 정부가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 금액 전부를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2015년 이뤄진 한일합의에 대해 불복하며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및 유족 21명은 2016년 12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1인당 2억원 배상을 요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억원은 2015년 한일합의에 따라 설치된 화해치유재단의 위로금인 1억원보다 2배 높은 수준이다.
1심 재판부는 2021년 4월 원고의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이나 청구 요건조차 갖추지 못해 옳고 그름에 대한 심리 없이 재판을 끝내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재판부는 국제법상 ‘국가면제’ 원칙에 따라 각하 결정을 내렸다. 국가면제 원칙이란 다른 국가 및 재산에 대해 동등한 주권국가라는 근거로 다른 국가에서의 사법관할권 및 집행권을 면제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즉 A라는 국가 법정에 B라는 주권국가를 피고로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위안부 피해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한 국가 영토 내에서 그 국가 국민에 대해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그 행위가 주권적 행위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국제 관습법이 존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그 근거로 이탈리아 헌법재판소의 ‘페리니 판결’, 브라질 최고재판소의 ‘Changri-la’ 판결 등을 들었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뒤집고 나치 시절 독일군의 이탈리아인 강제징용 배상 책임을 인정하도록 했다. 브라질 최고재판소는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고 나치 시절 독일군 선박에 의해 민간 선박이 폭격당한 것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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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재판에 직접 출석한 이용수 할머니와 유족 및 시민단체 회원들은 승소 판결을 받자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휠체어를 타고 법정을 나선 이 할머니는 ‘만세’를 외치며 기쁨을 표했다. 이 할머니는 이날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할머니들 한 분이라도 살아 있을 적에 일본이 진심으로 사죄하고 법적 배상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사법부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원고 변호인으로 나섰던 이상희 변호사는 “이번 법원의 판결은 인권 중심 국제법을 위한 세계의 시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인권회복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국제사회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누구도 면책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 측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일본의 자발적 배상과 사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변호사는 “기업이 피고인 강제징용 문제와 달리 이번 소송의 피고인은 국가이기 때문에 강제집행 등에 대해서는 아직 법리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이번 판결의 의미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일본 정부가 자발적으로 배상하고 사과할 수 있도록 충분히 활용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