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이데일리 김윤지 특파원] “물건 출하가 안 됩니다. 도착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 24일 베이징시 차오양구 왕징 8차선 도로가 한산한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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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주문한 식재료가 약속한 시간을 한참 지나도 오지 않아 배달 기사에게 문의하자 기자가 받은 답변이다. 중국에는 식재료부터 약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빠르게 주문할 수 있는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이 있다. 중국 알리바바의 신선식품 매장 허마셴셩(盒馬鮮生)은 매장 인근 3㎞까지 30분 내 배송도 가능하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 한국 등과 비교하면 배송비도 상당히 저렴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파트 단지가 배달 오토바이와 택배 차량으로 가득 찬다.
한국 교민을 포함해 350만 주민이 사는 베이징시 차오양구(區)에선 이 같은 풍경을 최근 볼 수 없게 됐다. ‘유령 도시’에 더 가깝다. 한산한 도로엔 빈 버스가 오가고, 상가는 불이 꺼져 있거나 배달 기사만 드나든다. 행인보다 흰색 방역복을 입은 방역 요원 ‘따바이’(大白)가 더 눈에 띈다. 차오양구를 중심으로 지난주 베이징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빠르게 늘어나자 지난 22일부터 봉쇄에 돌입한 탓이다.
| 베이징시 차오양구 왕징에 위치한 다수 은행, 편의점, 통신사 등이 ‘전염병 예방과 통제를 위해 영업을 일시 중단한다’는 안내문과 함께 문을 닫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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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방역 당국은 ‘정밀·과학 방역’을 앞세워 최근 20가지 최적화 조치를 내놨지만, 현실은 모순 가득한 ‘전면 봉쇄’다. 당국은 외출 자제를 촉구하며 온라인 주문을 막지 않았지만 성공이 쉽지 않다. 음식 배달은 가능하다고 하지만 당국 요구로 대다수 식당이 문을 닫았다. 식료품 배송을 허용했지만 일부 마트는 당국 조치에 영업을 중단했고, 배달 기사 구하기가 어려워 사실상 마비 상태다. 소매점이나 밀폐 유흥업소가 아닌 은행이나 병원 등은 영업을 중단하지 않았지만, 이들이 입점한 사무용 빌딩에서 전체 인원의 5%만 출근을 권고해 정상 운영이 불가능하다.
중국에 갓 도착해 베이징 생활 기반이 없는 이들은 막막함이 더 크다. 한국계 은행 앞에서 마주친 한국인 이모씨는 “이달 베이징으로 입국해 시설격리를 최근 마쳤다”면서 “하루빨리 휴대전화를 개통해야 하는데 문을 연 통신사가 거의 없어 찾느라 고생했다”고 토로했다.
현재 베이징에선 거주 아파트 출입은 물론 공공장소 어디든 스마트폰을 통해 ‘건강 QR코드’로 48시간 이내 코로나19 PCR 음성 증명을 하기 때문에 현지 휴대폰 개통이 필수다. 시설에 따라 24시간 이내 음성 증명을 요구해 매일 PCR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검사소 운영 여부는 사전 안내 없이 수시로 바뀐다. 공식적인 이동 통제는 아니지만 “돌아다닐 생각 마라”는 의미다.
| 베이징시 차오양구 한 아파트 단지 출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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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예전처럼 확진자 발생 시 아파트 단지 전체를 봉쇄하지 않는다. 확진자가 사는 특정 동만 폐쇄하지만 확산세가 거센 요즘은 임시 봉쇄가 빈번하다.
통상 중국의 핵산(PCR) 검사는 10명 단위로 이뤄진다. 검사소에선 10명의 검체를 면봉으로 각각 추출한 후 하나의 검사 용기에 한꺼번에 담아 동시에 검사를 한다. 모두 음성이란 전제 아래 빠르고 편리한 검사 방식이지만 양성이 나오면 실질적으로 음성인 사람도 ‘잠정적 확진자’ 취급을 받는다. 이때 확진자를 찾기 위한 개별 검사가 이뤄지는데, ‘범인’이 나올 때까지 10명이 속한 주택 단지가 모두 봉쇄된다. 최종 음성 판정을 받으면 봉쇄가 풀리지만, 그때가 언제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확진자가 나오면 외출 금지 등 5일간 봉쇄가 시작된다. 추가 확진자라도 나오면 봉쇄는 계속 연장된다.
이러다 보니 잠깐 외출했다 귀가하는 길 아파트 입구에 모인 방역 요원을 발견하고, 그렇게 ‘마지막 외출’이 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베이징에선 하루 1000명이 넘는 확진자 수가 나오는 요즘 “눈 뜨면 봉쇄”라는 말이 나온다.
| 23일 저녁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에 위치한 한 슈퍼마켓에 주민들이 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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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앱으로 식료품을 조달하려다 실패한 기자도 결국 ‘마트런’에 동참했다. 23일 오후 중국 메신저 위챗을 중심으로 한국인이 밀집한 왕징 대다수 지역이 봉쇄되고 배달도 금지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온라인 주문을 모두 취소하고 집 앞 쇼핑몰 지하 슈퍼마켓으로 달려갔다. 한산해서 즐겨 찾던 슈퍼마켓은 평소와 달리 주민들로 빼곡했다. 물건을 담을 카트부터 동나더니 일부 인기 품목은 이미 품절됐다. 채소·과일 가격 측정을 위한 줄만 끝없이 이어졌다. 사재기는 남일로 여기던 기자도 정신없이 장구바구니에 물건들을 쓸어담았다. 설탕 대신 소금을 사온 것도 영수증을 보고 알았다.
이날 저녁 당국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취지로 베이징 291곳을 임시 통제 구역으로 설정하고 3일간 통제한다고 발표했다. 교민 커뮤니티에선 임시 봉쇄라더니 한밤중 아파트 출입구를 막는 울타리 공사가 시작됐다면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창기보다 더 심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기자가 사는 아파트는 다행히 통제구역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오늘’에 국한된 이야기일 뿐이다.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오늘날 중국 방역 정책이기 때문이다.
한편 24일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전일 중국 본토 확진자 수가 무증상자 2만7517명을 포함해 3만1444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중국 일일 신규 코로나 확진자 수는 처음으로 3만명대를 넘어섰으며, 지난 4월 기록한 역대 최고치도 돌파했다. 해외 유입 212명을 더하면 신규 확진자는 3만1656명으로 늘어났다. 지역별로는 광둥성 9296명, 충칭시 7846명, 베이징시 1648명 순으로 확진자가 보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