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우리나라를 덮친 폭염에 꽃들마저 힘을 잃었다. 지난달 역대 8월 중 가장 많은 폭염일수를 기록하는 등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꽃망울을 떠뜨려야 하는 시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탓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꽃의 개화시기뿐 아니라 공생관계에 있는 동물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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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꽃시장에서 이데일리가 만난 꽃 판매업자들은 올해 폭염 때문에 꽃 생산이 예년 같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꽃을 구하기 위해 온 시장을 방문한 소매상인과 소비자들도 좀처럼 맘에 드는 꽃을 찾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서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엄모씨는 “꽃봉오리가 큰 꽃을 찾기 어려워졌다”며 “가격도 전보다 많이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양재동 꽃시장 경매시세에 따르면 지난 8월 거래된 절화(생화)는 124만 8159다발로, 1년 전 같은 기간(133만 3231다발)보다 6.3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꽃의 평균 최고거래가는 5만 5300원으로 1년 전(4만 8750원)에 비해 10% 이상 상승했다.
“꽃 줄어들면 곤충도 영향…기후변화 대비해야”
전문가들 역시 폭염과 꽃 생산의 상관관계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기온이 오르면 식물도 호흡량이 늘고 항상성을 지키기 위한 물질대사가 촉진돼 영양 소모가 커지기 때문에 잎이 시들거나 변색되기 쉽다는 설명이다. 박수진 전북대 원예학과 교수는 “재배환경이 급격히 바뀌면 개화시기가 지연되거나 꽃이 피지 않는다”며 “꽃봉오리가 생겨도 크지 않거나 조기에 시들어 죽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폭염은 적정 환경보다 매우 높은 온도이고 식물의 생육과 생장을 방해하기 때문에 자연히 수량이 줄고 품질도 나빠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개화시기의 변화가 곤충 등 다른 생물마저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윤준선 전북대 곤충생리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남에서 북으로 꽃이 피기 시작하면 벌이 천천히 이동하면서 꿀을 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날이 더워서 꽃이 안 피다가 며칠 사이에 확 피고 져서 벌들이 힘들다”며 “매미나 여치 등 상당수 곤충은 나무 수액이나 꽃에서 먹이를 구하는데 폭염 때문에 식물의 영양에 불균형이 발생하면 (곤충의) 개체 수가 줄고 생태계에도 부정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현철 부산대 환경생태학과 교수는 “겨울철 곤충은 알이나 유충, 번데기 형태로 땅이나 잡초 속에서 월동해서 온도 변화에 둔감하다”며 “식물의 75%는 곤충이나 동물에 의해 수정되는데 개화시기와 곤충의 활동시기가 맞지 않으면 수분과 수정이 이뤄지기 어렵고 과실 수가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래 기후변화에 대비하지 않으면 곤충과 식물이 줄어 기후에 강한 작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며 “심각성을 알리고 국민이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