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공무원이 되려면 윗사람에게 복종해야 한다. 법률상 의무이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선서로써 복종을 언약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명령은 절대적이지 않으니 복종도 상대적이어야 한다는 교훈이 쌓였다. 이로써 복종은 무조건 의무가 아니라는 이견, 나아가 반감도 감지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직사회를 지배하는 ‘복종’의 변천사를 따라가 본다.
◆ ‘나는 복종한다’ 언약받던 공직사회
18일 관가에 따르면, 대한민국 모든 공무원은 ‘상관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복무규정 의무를 진다. 대상은 국가·지방공무원을 망라하고 정무직·별정직 공무원도 해당한다. 근거는 국가공무원법 제57조(복종의 의무)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공무원법(제49조 복종의 의무)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이에 대한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는 단서가 달린다.
명문화된 복종 의무는 실질적으로 공직사회를 지배해왔다. 공무원 임용 선서문이 대표적이었다. 모든 공무원은 임용되려면 기관장에게 선서하는데, 선서문을 읽으면서 복종을 약속했다. ‘본인은 법령을 준수하고 상사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한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상 선서문) 이 복무규정이 2010년 7월 바뀌기까지 줄곧 공무원은 자기 입으로 상사에게 복종을 약속했다. 지방공무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장 최근까지 소속 공무원에게 ‘상사에게 복종’을 구두로써 확인받은 국가기관은 법원이다. 대법원은 2021년 12월31일에 이르러서야 법원공무원규칙에서 ‘상사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한다’는 선서 문항을 지웠다. 국가공무원법 규정에서 복종이 사라진 지 11년여만이었다.
복종은 절대적일까. 군인(공무원)이라면 명령 불복종은 적전에서 최고 사형(군형법 제44조 항명)에 처하지만, 특수 직역에 한정된 사례다. 일반 공무원이 복종 의무를 어긴다고 해서 형사 처벌로 직결하지는 않는다. 대신 인사 평정에 반영되거나 징계를 받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정당한 명령을 전제로 하는 얘기다. 명령이 부당하면 불복종이 답이라는 의미다. 우선 복종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대상은 ‘소속 상사’일 뿐이고, 명령 목적은 ‘직무’에 해당해야 한다. 소속 상사는 직무를 지휘·감독할 권한을 가진 이로 좁게는 기관의 장이고 넓게 보면 (다른 기관) 상급자다. 명령이 정당하려면 ▲소속 상관이 ▲절차를 밟아서 ▲부하 직무 범위에서 ▲실현 가능한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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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서까지 받는 권위주의 저문 배경은
만약 명령의 형식이 아니라 해석 문제라면, 일단 복종이 원칙이다. 나중에 잘잘못을 가리고 잘못이면 책임은 소속 상관이 진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발생한 일부 공무원의 직권남용 사건은 법정에서 시비를 가렸거나, 가리고 있다. 당시 상관으로서 부하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부당한 명령을 내렸는지에 대한 판단이다. 이 사건의 전제는, 당시 후임자는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거나 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복종과 공직자의 사명은 일부 일치하지 않는다. 육성으로 복종을 선서 받는 권위적인 시대가 저문 배경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복종은 상대적 의무인데 선서는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복종 확약해야 공무원에 임용되는 탓이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스스로의 의지와 반대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양심 자유와 맞닿은 사안이다. 선서문은 사라졌지만 법률로써 근거하는 복종 의무는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