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워치)槿弔! 통화량

  • 등록 2004-03-10 오후 5:43:24

    수정 2004-03-10 오후 5:43:24

[edaily 강종구기자] 시중에는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이 남아돈다는데 통화량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통화증가율은 광의의 통화인 M2나 총유동성인 M3나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2월 M2증가율은 2%대 중반 정도로 추정된다. M3증가율은 5% 내외일 것으로 한은은 보고 있다. 지난 1월 2.4%와 4.9%에 비하면 조금 상승한 것이지만 여전히 과거 평균 증가율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한은 내부에서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실질 통화량뿐 아니라 명목 통화량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설 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흘러 나온다. ◇M3, 지난해부터 감시지표에서도 빠져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라는 칭송을 받는 밀턴 프리드만 교수는 세계 경제가 대공황에 빠지게 된 것은 경제활동이 위축되기 시작했을 때 중앙은행이 통화공급량을 늘리기는 커녕 오히려 이를 대폭 감소시킴으로써 금융경색을 야기시켰기 때문임을 입증했다. 금융경색은 주가와 부동산가격 폭락을 가져왔고 이는 다시 은행과 기업의 도산으로 이어져 결국 대공황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프리드먼 교수는 "일정한 비율로 통화량을 증가시켜나가는 일은 이 지상을 경제활동의 불규칙한 변화가 전혀 없는 천국으로 변모시키지는 못하지만, 물가안정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게 함으로써 평화롭고도 풍요한 사회를 건설하는데는 크게 이바지한다"고 설파했다. 정부나 중앙은행 마음대로 통화를 대폭 늘리거나 줄이지 말고 경제상황에 관게없이 일정하게 통화량을 늘리라는 것이었다.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 "통화타켓팅"을 통화정책의 목표로 삼았으나 80년대 이후부터 사실상 버림을 받은 상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M2를, 외환위기 이후에는 M3를 타겟 대상으로 삼았으나 2001년부터 물가타겟팅으로 선회했다. M3는 2002년까지만 해도 물가와 함께 감시지표로 활용됐으나 지난해부터는 더 이상 감시대상도 아니다. ◇"통화량요? 그거 아무도 관심 없을텐데요" 마치 항변이라도 하듯 통화량은 2002년 이후 급격한 변동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투기 열풍이 몰아칠 때는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더니 최근에는 마치 거품이 빠지듯 증가율이 낙하하고 있다. 수년간 우리 경제가 겪어온 혼란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 하다. 특히 최근 통화량증가율 급락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수출이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외국인 주식투자자금도 급격하게 유입되고 있을 정도로 공급요인이 확실하다. 한국은행이 통안채를 대량으로 발행해 본원통화 증가를 막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실제로 최근 몇달동안 본원통화는 꾸준히 늘고 있다.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은 엄청난 유동성을 등에 업고 강세행진을 펼치고 있다. 경제 자체에 무언가 중대한 변화가 있거나 통화지표가 어떤 경고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건만 한국은행은 태연하다. 한은내 연구소인 금융경제연구원은 아예 통화지표에 대한 연구에서 손을 놓은 상태고 관련 부처에서는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것이냐"는 반응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M2나 M3가 늘지 않는 것은 통화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민간(기업이나 가계)이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동성은 매우 풍부하고 은행에는 돈이 남아 돌기 때문에 콜금리를 맞추기도 벅찰 정도다. 그래서 통안채를 발행하고 환매조건부채권(RP)를 매각해 유동성을 조절한다. 기업투자가 활성화돼서 대출이 늘고 실물경제가 살아나면 통화증가율도 상승할 것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어떻게 보면 정상으로 회귀하는 과정이다. 가계대출로 급격하게 증가했던 통화량의 거품이 빠지는 과정이다. 통화량증가율 감소로 인해 기업 부도가 늘어나거나 하는 부작용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은이 통안채를 발행해 통화를 흡수한다는 것은 철저히 오해다. 한은이 흡수하는 것은 해외부문에서의 유동성공급이지 국내 시장과는 관계 없다"고 덧붙였다. ◇"뭔가 중대한 변화, 방치는 안돼" 시장의 전문가들도 비슷한 얘기를 하지만 뉘앙스는 다소 다르다. 대우증권은 2002년 급격한 증가로 인한 반사효과 및 민간의 자금수요 부진, 시중은행의 보수적인 대출행태 등을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M3는 경기선행지수 항목으로 최근 급락에 관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굿모닝신한증권의 김일구 연구위원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한국은행이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돈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다. 김 위원은 "통화량이 마이너스로 들어가는 것만은 피해줘야 하는데..자신감이 아니라 달리 길이 없는 것 같다. 정부가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고 있는데 이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정부가 통화정책을 대신하는 꼴이다"고 질타했다. 김 위원은 우리나라 경제정책 시스템 자체가 외환위기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한 쪽으로만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계의 금융지배, 외환보유액 과다 보유 논란 등도 모두 거기서 파생된 문제라는 것이다. 한은은 과다 유동성에만 대비할 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에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M2나 M3 증가율이 떨어졌다는 것은 곧 돈이 돌지 않는다는 것. 가계나 기업이나 현금을 보유한 채 쓰지 않고 은행에서 빌리지도 않는다. 돈이 고여 있다 보니 단기자금성격의 M1은 느는데 M2나 M3는 정체상태다. 이는 우리나라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다. 기본적으로 현금보유 욕구가 커졌다는 것이다. 미국 MMF의 경우 2조달러의 규모로 GDP의 20%에 달한다. 우리는 50조원이 채 되지 않고 비율로도 10%에 미치지 못한다. 김 위원은 자꾸 돈이 많다고만 하지 말고, 단기 부동자금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을 넘나들며 투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하지 말고, 왜 회전율이 낮아졌는지,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분석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에 은행들이 망하는 것을 보고 현금을 쥐고 있으려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기업들이 돈 안드는 투자를 선호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투자가 없기 때문에 통화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 파이터"인 한은의 최대 무기는 콜금리목표를 조절하는 것. 그러나 지금 한은은 콜금리를 올릴수도 내릴 수도 없는 처지다. 금리를 내리자니 물가가 걱정이고 금리를 올리자니 그렇지 않아도 부진한 내수가 더욱 위축될 것이 부담이다. 그런데 은행권에는 끝없이 자금이 고이고 아무도 은행을 찾지 않으니 은행들끼리도 돈을 빌려주고 빌려줄 일이 별로 없다. 당연히 콜금리는 하락압력을 받는다. 남는 돈을 묵혀 둘 수 없으니 채권투자도 늘어난다. 당연히 채권금리도 하락한다. 금리가 하락하니 또 당연히 주식가치도 상승한다. 내수는 죽을 쑤고 경제회복도 지지부진한데 금융자산 가격만 상승하는 모순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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