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쿠팡과
CJ제일제당(097950)의 식료품 가격 협상이 7개월째 지연되면서 양사 간 갈등이 유통가 전체로 번지고 있다. CJ제일제당이 유통 강자
신세계(004170)와 연대에 나선 가운데, 쿠팡은 중소·중견 제조사와 협력을 강화하며 맞서는 형국이다. 전통 유통 강자와 신흥 채널을 각각 주축으로 한 합종연횡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 쿠팡 배송 트럭. (사진=쿠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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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지난 1~5월 자사에 입점한 즉석밥 중 중견기업 제품이 전년 동기 대비 최고 50배, 중소기업 제품은 최고 100배 이상 판매량이 증가했다고 12일 밝혔다.
쿠팡에서 중소·중견 제조사 즉석밥 판매량이 늘어난 것은 ‘햇반’ 등
CJ제일제당(097950) 제품 직매입 발주를 중단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커머스와 식품 제조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양사는 납품 단가를 두고 7개월째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쿠팡과 CJ 간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닫게 된 건 앞서 CJ가 지난 8일 신세계그룹 유통 3사(
이마트(139480)·SSG닷컴·G마켓)과 파트너십을 맺으면서부터다. CJ 측은 “식품과 유통 부문에서 최고 경쟁력을 갖춘 회사가 손을 맞잡은 것”이라며 “올해 4분기까지 만두, 국물요리, 밀키트와 비건 등 혁신 제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CJ는 앞서 네이버, 11번가 등 이커머스 채널과 협력을 확대하며 ‘반(反) 쿠팡 전선’을 형성했다.
쿠팡과 CJ의 갈등은 유통사와 제조사 간 힘 겨루기를 넘어 유통업계 전통 강자와 신흥 강자 간의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신세계는 최근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을 선보이며 쿠팡의 유료 멤버십을 정면 겨냥하고 나섰다. 또
LG생활건강(051900)과 협업을 공식화하면서 이 구도는 더욱 뚜렷해졌다. LG생활건강은 지난 2019년 쿠팡의 납품 단가 인하 통보에 반발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이후 쿠팡에서 철수했다.
| 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세계 유니버스 페스티벌’ 기자간담회에서 강희석 이마트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백주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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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석 이마트 대표는 지난 8일 “디지털 유통이 등장한 이후 제조사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매출은 증가했지만 이익은 크게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유통 시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며 “이것은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쿠팡과 갈등을 겪은 기업과 협업을 강조하면서 견제에 나선 것이다.
쿠팡은 중소·중견 기업과 협력 및 자체브랜드(PB) 상품 강화를 통해 대응하고 있다. ‘독과점 대기업’과 밀월을 끝내고 가성비·품질을 앞세운 제조사를 발굴해 소비자 편익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쿠팡 관계자는 “대기업에 밀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기업들이 공정한 판매 환경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 유통사와 신흥 채널 사이의 힘 겨루기가 본격화하면서 제조사 간 합종연횡도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유통시장 규모는 약 401조원으로 업체별 매출 점유율은 1위가 신세계(13.4%), 2위 쿠팡(9.8%), 3위 네이버(7.4%), 4위 롯데(7.3%) 순으로 조사됐다.
한 식품 업계 관계자는 “쿠팡의 시장 내 지위가 높아지면서 납품 단가 인하 요구에 반발하는 전통 제조업체들이 쿠팡의 맞수 신세계, 롯데 등과 밀월을 강화하는 분위기”라며 “제품력 강화를 통해 유익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게 제조사 입장에서는 최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