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관련업계와 지자체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500여곳으로 추정되는 재개발·재건축 사업구역에서 대부분 백지동의서가 관행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은 조합설립동의서에 철거와 신축 비용, 분담금 추산 방법 등을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을 빨리 진행시키려는 조합설립추진위가 내용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은 동의서에 조합원의 이름과 도장을 받아 왔고, 인허가권을 가진 지자체는 형식적으로 관리해오다 결국 문제가 곪아 터진 것이다.
그동안 조합 무효 소송과 관련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었으나 지난달 29일 대법원이 처음으로 부산 해운대 우동6구역조합의 조합설립 인가를 무효 판결함에 따라 향후 유사한 소송의 기준을 제시한 셈이다.
이에 앞서 착공을 눈앞에 뒀던 서울 왕십리 뉴타운 1구역 재개발조합에 대해서도 지난달 21일 서울행정법원이 무효 판결한 바 있다.
성북구 동선3구역처럼 노후 불량 건축물 비율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아예 정비구역 자체를 무효로 한 1심 판결도 있으며 정비구역 지정 전에 설립된 추진위는 무효라는 소송도 줄을 잇고 있다.
◇ 원인 : 조합 편의주의와 관리부재
법원의 잇따른 조합 무효 판결은 재개발 사업 추진 과정에서 편의주의와 형식적인 관리감독이 빚은 결과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해 10월 서울지역 47개 재개발 사업구역을 조사한 결과, 도정법에서 정한 비용분담 내역을 기재한 동의서를 사용한 곳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왕십리 뉴타운 1구역의 경우 644장의 조합설립 동의서 중 59장이 기본적인 내용을 공란으로 비워둔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관할 지자체인 성동구청은 이같은 절차상 문제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조합설립을 인가해 준 것이다.
◇ 소송 직접적 이유 : 사업비 눈덩이처럼 불어나
설계개요와 비용 분담 내역이 없는 백지동의서 문제는 사업이 진행되면서 분담금이 가시화되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다. 대부분 사업 초기에 비해 사업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포구 아현4구역은 사업 초기에 제시한 사업비와 관리처분인가 이후 제시한 사업비가 다르다는 이유로 지난해 10월 관리처분인가 취소 판결을 받았다.
경실련은 정비계획 수립 단계에서 공공이 사업비를 검토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토해양부와 서울시는 재개발·재건축 조합을 대상으로 백지동의서 여부와 지자체 행정감독 실태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를 보고 필요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 전망 : 절차상 하자 치유하면 정상화 예상
건설업계에도 발등의 불이다. 사업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조합 설립과 시공사 선정이 진행될 수도 있기 때문에 조합의 절차상 하자를 보완하는데 적극 협조한다는 계획이다.
대법원은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영동차관아파트 재건축 조합 무효 소송에서 조합원들 결의에 하자가 있어도 사후에 정상적인 재결의 과정을 거치면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A건설업계 관계자는 "소송을 제기한 측도 다시 조합을 설립해 장기간 사업이 지연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자를 보완해 조속히 다시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최대한 돕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재개발 사업 과정을 공공이 직접 관리감독하는 제도도 가시화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뉴타운·재개발·재건축사업 관련 정보와 진행 과정을 담은 클린업시스템(http://cleanup.seoul.go.kr)을 오픈했다. 또 추가 부담금을 산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이달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