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아침마다 초등학생들이 오가는 서울의 한 상가. 이 곳에 설치된 자판기에는 ‘복숭아 맛’, ‘레몬 맛’ 등 학생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음료수처럼 진열된 이 제품은 다름 아닌 합성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다. 당연하게도 학생들에겐 유해한 환경이지만, 전자담배 무인판매는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 서울의 한 무인 전자담배판매점(사진=이유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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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이데일리가 방문한 무인 전자담배판매점은 별도의 출입문 없이 자동판매기만 놓여 있었다. 판매기 상단에는 ‘만19세 미만 청소년 이용금지’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출입문이 없고 판매기 앞을 지키는 사람도 없어 누구나 자유롭게 담배를 구경할 수 있었다. 또 구매 시 유일한 성인 인증 절차는 신분증을 스캔하는 것인데, 이마저도 부모 등 타인의 신분증을 가져오면 어렵지 않게 담배 구매가 가능한 구조였다. 인근 주민은 “학교 주변 시설로는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업을 학교 앞에서 버젓이 할 수 있는 이유는 법적 규제가 없는 ‘사각지대’기 때문이다. 교육환경보호에관한법률(교육환경보호법)은 학교 경계로부터 직선거리 200m의 범위 지역을 교육환경보호구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구역에서는 담배사업을 포함해 유흥주점, 숙박업 등 28개 분야의 영업이 금지된다. 그러나 담배사업법 제2조 제1항은 담배를 ‘연초(煙草)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합성 니코틴 담배는 법적으로 단순 ‘공산품’에 분류된다. 이 때문에 교육환경보호법은 합성 니코틴 담배를 청소년 유해물질로 간주하거나 학교 인근에 판매점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경고 그림·문구 표기 등 각종 규제와 개별소비세 등 과세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초등학교 근처에서 무인 전자담배판매점이 버젓이 운영될 수 있는 이유다.
| (사진=교육환경정보시스템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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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판매점 특성상 ‘관리 소홀’ 문제도 제기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국 무인 담배판매점 62곳 중 52곳(83.9%)은 출입문이 상시 개방돼 있었고, 성인 인증 장치(신분증·신용카드)도 부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39곳(62.9%)은 출입문에 ‘19세 미만 출입 금지’ 문구가 붙어 있지 않았다. 또 실제 제품 구매 시도 결과 절반에 가까운 48.3%(30곳)는 성인 인증 장치가 부착돼 있었음에도 다른 사람 신분증을 이용해 제품을 살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합성 니코틴 담배를 규제하자는 법안은 지난 20대 국회와 21대 국회에서도 연이어 발의된 바 있으나 담배의 독성이나 유해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규제 마련이 차일피일 미뤄져 왔다. 22대 국회에서도 합성 니코틴을 사용한 액상형 전자담배 등을 규제 범위에 포함하는 내용의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돼 있으나 아직 계류 중이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담배의 정의를 ‘연초의 잎’에서, ‘연초 및 니코틴’으로 확대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이와 관련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우리나라의 담배와 관련된 모든 정의는 담배사업법 제2조 제1항을 따르고 있다”며 “그럼에도 현행법상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에 해당하지 않아 사업자들이 법적 규제를 피해 학교 근처에 전자담배 가게를 내는 것이고, 세금 부과도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장 근본적이고 빠른 해결책은 담배사업법 제2조 제1항에 명시된 담배의 ‘정의’를 개정하는 것”이라며 “하루빨리 담배 정의를 확대 개정해야 앞으로 새롭게 생겨날 모든 종류의 담배를 법적으로 규정시킬 수 있고, 법의 교묘한 사각지대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