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확장억제’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윤 대통령은 18일 순방길에 오르기 직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한미동맹에 기반을 둔 확장억제는 미국 영토 내 핵무기를 유사시에 사용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 도발을 억지할 수 있는 모든 패키지를 총체적으로 망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4년 5개월만에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 가동앞서 16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차관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 공동성명에서도 “북한의 어떤 핵 공격도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며 “미국은 핵, 재래식, 미사일 방어 및 진전된 비핵 능력 등 모든 범주의 군사적 능력을 활용해 한국에 확장억제를 제공하겠다는 철통같고 흔들림 없는 공약을 재강조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이 핵 공격을 받았을 경우 핵 보복을 하겠다는 ‘핵우산’의 수준을 넘어서 미 본토 수준의 방어력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5박 7일간의 일정으로 영국ㆍ미국ㆍ캐나다 3개국 방문을 위해 18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1호기에 탑승한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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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확장억제의 역사는 1992년 미국이 핵우산으로 한국의 핵 위협에 대응할 것이라는 공약을 할 때부터다. 당시 한국이 비핵화 선언을 하면서 한반도에 배치됐던 미 핵무기는 철수했다. 미국은 1978년에 전술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했지만, 1992년 완전 철수하면서 한국을 상대로 핵우산 공약을 공표했었다.
한미는 2006년부터 핵우산 공약을 확장억제 개념으로 바꿨다. 한국이 좀 더 강력한 핵 억제 조치를 미국에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16년 10월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미간 확장억제전략협의가 꾸려졌다. 이내 남북 화해 분위기에 따라 2018년 3월 이후 중단됐다.
그러다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 재래식, 미사일 방어능력을 포함해 가용한 모든 범주의 방어 역량을 사용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재확인하면서 확장억제전략협의체 재가동 합의가 이뤄졌다. 최근 이 협의체 회의가 이뤄진 이유다.
北, 핵 사용시 ‘압도적·결정적 대응’ 직면?
이번 한미 차관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 회의 결과에서 주목할 부분은 양국의 모든 전력을 사용해 대응하겠다는 표현이다. 북한의 도발 억제를 위한 그간의 메시지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기존의 핵·재래식 위협 등 군사력뿐만 아니라 ‘진전된 비핵화 능력’, 즉 우주·사이버·전자기 등 영역까지 모든 제반 요소를 동원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의 어떠한 핵 공격도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같은 메시지는 공동 보도문 형태가 아닌 공동성명(Joint Statement)으로 격상됐다.
| 신범철 국방부차관(맨 왼쪽)이 15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앤드루스 합동기지를 방문해 B-52 전략폭격기의 핵탄두 탑재 부분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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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북한의 핵 공격에 대한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이 과연 이행할 수 있고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남북한 간의 우발적 충돌이 발생했을 경우를 가정하면, 북한이 재래식 무기 분야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대응’ 기조에 따라 미국이 전략핵무기로 이에 대응한다면, 북한도 전략핵무기로 서울과 워싱턴·뉴욕을 보복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되고 미 본토도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는 얘기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한국이 대북 핵 억제력을 보유하기 전까지는 북한의 핵 공격에 대해 지나친 확전과 전면전을 가져올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이 아니라 북한의 핵 공격 수준과 그로 인한 피해에 상응하는 ‘즉각적이고 자동적인’ 핵 보복이 바람직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현실적으로 지킬 수도 없고, 만약 지킨다면 남북 및 북미 간 전면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큰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을 공약한 것은 유감이라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