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가 버블 붕괴 공포 탓에 불안에 떨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 비용 부담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경기 침체를 둘러싼 우려가 점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투매 확산이 2000년 닷컴 버블보다 더 큰 재앙일 수 있다는 월가 거물들의 경고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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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10곳 중 9곳 “침체 불가피”
18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블루칩을 모아놓은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3.57% 급락한 3만1490.07에 마감했다. 하루 만에 1164.52포인트 빠졌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6월 이후 거의 2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지수는 4.04%, 4.73% 각각 폭락했다.
시장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이날 폭락이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스콧 마이너드 구겐하임 파트너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앞으로 몇 달간 혹은 몇 년간 닥칠 재앙과 비교하면 이날 지수 하락은 약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타깃의 실적이 부진한 이유는 월마트와 같다. 크레셋 캐피털의 잭 애블린 창업자는 “많은 재량 소득(discretionary income·개인소득 중 소비와 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이 (가격이 오른 필수 소비재인) 식료품과 에너지로 흘러들어갔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쓸 돈이 줄어든 가계가 다른 임의 소비재를 덜 구매하면서 유통업체들에게 직격탄으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연방준비제도(Fed)의 돈 풀기,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글로벌 공급망 대란, 원자재 가격 폭등세 등 여러 문제들이 얽혀 있다. 그만큼 사태 해결이 간단하지 않다는 게 월가의 우려다.
기업들의 실제 목소리에서 이를 감지할 수 있다. 비영리 경제조사기관 컨퍼런스보드가 이날 내놓은 조사를 보면, 설문에 응한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중 “인플레이션이 수년 내 점차 잦아들겠지만 가벼운 침체는 올 것”이라고 답한 이는 57%였다. 스태그플레이션과 경기 경착륙을 점친 이는 각각 20%, 11%였다. CEO 10명 중 9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침체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경기 연착륙(소프트랜딩)을 예상하는 CEO는 12%에 불과했다. 특히 절반 이상인 54%는 “증가하는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하는 식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답했다. 인플레이션 악순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CNBC에 나와 “어느 시점에 경기 침체를 겪거나 매우 느리고 부진한 성장세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큰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면 1년 전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 (경기 상황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많은 기업들이 필요 자본을 늘리는데 어려운 여정을 겪을 것”이라고도 했다.
“나스닥, 고점 대비 75% 빠진다”
월가의 투자 전설이자 헤지펀드 GMO 창업자인 제레미 그랜섬은 CNBC에서 “이번 버블은 미국 기술주에 집중됐다는 점에서 2000년과 매우 많이 닮아 있다”면서도 “두려운 것은 그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미국 주식에만 버블이 있던 2000년과 달리 지금은 부동산, 채권, 에너지, 금속 등 모든 가격이 부풀려졌다는 점에서 1980년대 일본식 버블과 비슷하다는 의견 역시 내놓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전날 월스트리트저널(WSJ) 행사에서 “미국 경제는 강하다”며 “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버틸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고 본다”고 자신했지만, 시장 상황은 녹록치 않은 셈이다.
마이너드 CIO는 “최근 상황은 인터넷 버블 붕괴와 흡사하다”며 “올해 여름 나스닥 지수는 고점 대비 75%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현재 나스닥은 고점 대비 28%가량 빠진 상태다.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추가 하락할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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