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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문서에는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 발표(1982.1) △전두환 대통령 암살을 기도한 버마 아웅산 묘소 폭발사건(1983.10) 및 북한의 3자회담 제의(1984.1) △남북한 체육회담(1984.4~5) △남북한 수재물자 인도·인수(1984.9~10) △제8~10차 남북적십자회담(1985.5∼12)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1985.9) 진행 과정과 회의록이 포함됐다.
1984년 수재물자 인도·인수를 계기로 적십자 본회담이 진행됐고, 1985년 역사적인 첫번째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됐다. 당시 남북은 ‘이산가족 고향방문과 예술공연단 교환방문(남측 합의문 제목)’이라는 내용으로 인적 교류를 했다. 또 10차 남북적십자회담 등을 하며 남북의 교류가 활기를 찾던 시기였다.
10차 남북적십자회담 당시 북한의 기자 50여명은 도보로 명동지하상가와 롯데백화점 등을 관광했다. 이를 두고 북측은 “명동거리에 이르니 거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 뚫고 나가기 힘들 정도였다”고 당시 수많은 인파가 몰렸던 명동에 대해 평양방송을 통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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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 등을 계기로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왔지만 공식적으로 롯데백화점에 방문한 것은 그때가 처음으로 추정된다. 북측은 같은 해 이산가족 상봉 당시에는 “우리측의 참관지 선정문제와 관련 롯데백화점 쇼핑을 피하는 대신 고궁, 공연 영화관람을 요청했다”고 문서에서 밝히고 있다. 당시 북한 측에서는 한국의 발전된 상황을 보는 것을 막기 위해 백화점 관광 등을 거부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북측은 “백화점에 무엇하러 가겠는가, 63층(63빌딩)에 올라가서 서울시내를 보나 쉐라톤에서 서울 시내를 보나 같지 않겠는가”라며 “그러나 상대측의 안내를 존중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고 수긍(설복)한다”고 어쩔 수 없이 남측의 프로그램을 따른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산가족 상봉 당시에는 남측에서 하얏트호텔 공연, 삼성전자 관광, 삼원가든 석식, 63빌딩 및 서울대공원 관광, 자연농원 관광 등 코스를 준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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