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대 주부들 “사교육비 아끼자” 영어공부 붐




방송대 대거 등록… “직접 지도 자신감, 만학의 보람도”

  • 등록 2004-05-17 오후 8:12:14

    수정 2004-05-17 오후 8:12:14

[조선일보 제공]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한국방송통신대 부근 건물 2층. 저녁 7시30분쯤 방송대 영문과 학생들이 ‘학습관’이라고 이름 붙인 50여평 교실에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이날 스터디그룹 발표를 맡은 학생 김미숙(35·영문과 3)씨가 영국문학사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자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1시간30분 정도 진행되는 스터디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32명. 이 중 남학생 3명과 미혼 여학생 등 11명을 뺀 18명이 결혼한 주부들이다. 김씨 역시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대졸자 주부. 유치원과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자녀 두 명을 기르고 있다. 김씨는 “영어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아이들 영어 교육방법을 몰라 방송대 진학을 선택했다”며 “요즘에는 의욕이 생겨서 새벽 2~3시까지 영어 책에 파묻힐 때도 많다”고 말했다. 방송대 강의실을 주부들이 점령하기 시작했다. 올해 방송대 전체 학생에서 주부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18%(3752명). 학생 5명 중 1명꼴이다. 이 중 주부학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은 학과가 자녀 교육에 유용한 영어영문학과. 올해 주부 비중이 21.2%에 달했다. 4년 전인 2000년에는 17.5%였다. 유아교육과, 교육과, 가정학과 등 자녀 교육과 관련있는 학과들도 모두 결혼한 주부 학생 비율이 20%를 넘는다. 방송대 한 학기 등록금은 25만원. TV·라디오·인터넷 강좌, 학교 강의를 포함해 1년에 50만원이면 충분하다. 월 10만~20만원에 달하는 초등학생 학원비를 감안하면 엄마가 배워 사교육을 대신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란 얘기다. 입학이 수월하고 집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는 방송대 강의시스템도 자녀를 키우는 주부들에게 큰 장점이다. 7살, 5살 자매를 둔 정선아(33·영문과 4)씨 역시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대졸자. 두 딸의 조기 영어 학습 방향에 갈피를 못잡겠다고 느낀 것이 방송대 입학의 계기였다. 정씨는 “이제는 아이들 발음도 교정해주고, 책 읽다 문법도 설명해줄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그는 요즘엔 동네 아줌마들과 ‘품앗이 영어 과외’를 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고1, 초등 5학년 자녀를 둔 하성호(45·영문과 3) 주부는 “과거 배운 내용과 지금 배우는 내용은 천지차이”라면서 “현대 감각에 맞게 영어를 공부하다 보니 최근 입시 경향에 맞는 영어 지도를 직접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자녀 교육과 만학의 꿈을 함께 이루는 만학도들도 많다. 5살과 7살 남매를 둔 주부 이은주(39·영문과 3)씨는 하루 4~5시간씩 영어 공부에 매달린다고 한다. “영어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말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두 시간, 밤 10시에 시작해 2~3시간 영어책을 잡는다. 고교 졸업 후 18여년 만에 몰두하는 영어 공부다. “첫 아이가 4살때쯤 영어 동화책도 읽어주고 테이프도 들려줬죠. 그런데 모르는 단어는 튀어나오고 맥락 이해도 어려웠어요.” 이씨는 방송대 진학을 결심했다. 강의는 라디오나 케이블TV를 통해 듣고, 출석은 한 학기당 3일만 하면 됐다. 일주일에 두 번인 스터디 모임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안승신 영문과 교수는 “학과에 여학생이 많은 데다 주부학생들이 늘어 교실에 들어가면 일부러 남학생을 찾아봐야 할 정도”라며 “주부 상당수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30·40대 대졸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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