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 퇴직후 경비원으로…"'내려놓기' 중요했죠"

베이비부머 경력경로 이해 위한 종단연구 보고서
주된 일자리 퇴직 후 만족도·경력 등 분석·인터뷰
  • 등록 2020-06-08 오후 12:00:00

    수정 2020-06-08 오후 12:00:00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대기업에서 26년간 근무하고 임원까지 승진한 뒤 퇴직한 A씨(62). 그는 퇴직 후 공사현장 쇠파이프 운반, 대형마트 상하차 물건 운반 등을 거쳐 공공기관 시설보안직으로 재취업했다.

A씨는 “정년 퇴임후 사회적으로 왕따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그러나 이후 회사라는 온실을 잊고 노동의 가치를 신성하게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 자신의 생활 철학을 바꾼 뒤 일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뒤, 느끼는 삶의 만족도와 건강·경력 등을 상세히 조사하고 인터뷰도 담은 책이 나왔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신중년 인생 3모작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8일 한국고용정보원은 ‘베이비부머의 주된 일자리 퇴직 후 경력경로 및 경력발달 이해를 위한 질적 종단 연구(6차년도)’보고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1955년~1963년 태어나 1980년대 민주화운동,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등의 사회경험을 공유한 집단을 일컫는다.

보고서에 따르면 은퇴한 베이비부머가 재취업을 하면서 타인과 비교, 기존 인식에 어려움을 겪다 ‘내려놓음’,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를 통해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한 이후에도 만족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특성은 △퇴직에 따른 심리·정서·관계·경제적 위기 회복 △내려놓음(변화와 수용) △주체적인 삶의 목표 설정과 실천 △경제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가운데 본인을 위한 삶을 지향 △쓸모있음과 인정욕구를 비롯한 존재감 회복 등이다.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투자신탁회사와 증권사에서 총무와 영업 등을 거쳐 퇴직한 B씨(남, 62세)는 자격증을 취득해 6년째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B씨는 갑작스럽게 닥친 퇴직 당시 자녀들이 아직 독립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해 허탈하고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이후 B씨는 “타인과의 비교, 돈 욕심을 내려놓고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출근하며 가장의 역할을 하는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됐다”며 “아들이 ‘아빠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문자도 하더라”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하다 퇴직한 C씨(여, 62세)는 “진짜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밀려오는 허탈감과 우울감에 힘든 시기를 겪었다”며 “그러나 시간이 흘러 90% 이상을 차지하던 일의 비중을 50%로 낮추는 대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베이비부머의 경력을 재설계하고 은퇴 후 삶의 의미를 되찾아 줄 수 있는 다양한 직업훈련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일과 학습의 연계, 은퇴 후 삶의 의미, 보람과 재미를 추구하는 다양한 학습이 지역 사회 평생학습의 형태로 자리 잡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베이비부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쓴 김은석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는 생계유지 측면에서의 취업 및 직업훈련 지원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으나, 행복한 노후와 삶의 질 향상 측면에서는 고용·교육·복지의 긴밀한 연계에서 베이비부머세대의 ‘손상된 존재감 회복’을 지원하는 보다 다양하고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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