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10년` 반복되는 강제집행의 계절…"우린 이제부터가 겨울"

서울시 겨우내 금지했던 강제집행 3월 들어 재개
노량진수 산시장·개포주공 1단지 등 강제집행지역 다수
세입자 "경비업체 용역들 막무가내로 인권침해"
전문가 "세입자 목소리 반영할 창구 마련해야"
  • 등록 2019-03-14 오후 12:29:00

    수정 2019-03-14 오후 12:29:00

지난 5일 방문한 서울 동작구 구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어젯 밤 용역들이 들어와 시장을 통로를 잡동사니로 막아 놓는 등 난장판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사진=최정훈 기자)


[이데일리 최정훈 황현규 기자] 지난 4일 오전 8시 서울 강남구 개포 주공 1단지 종합 상가 앞. 상가 안으로 들어가려는 법원 집행관들과 이를 막아서는 철거민 연합 사이에서 격한 몸싸움과 고성이 오갔다. 이들의 몸싸움 뒤편에서는 재건축조합원들이 “재산권 침해하는 철거민은 물러가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반대편에 있는 전국철거민연합회 측은 “삶의 터전을 빼앗지 말라”고 호소했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시작된 올해 첫 강제집행 현장이었다.

개포주공 1단지 강제집행을 시작으로 서울 시내 곳곳의 강제집행이 재개된다. 2016년 서울시가 12월부터 2월까지의 동절기에 강제철거를 금지한 이후 봄철만되면 강제집행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매년 현장에서 발생하는 시행자와 세입자 간 무력충돌과 인권침해 문제 해결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특히 강제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세입자들은 경비업체가 집행 분위기를 조장하고 물리력을 사용하는 부분이 가장 불안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집행관이 관리·감독 철저히만 해도 철거 현장에서의 불법행위가 줄어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자료=이재정 의원실)


강제집행 현장 배치 경비업체 해마다 늘어

2009년 1월20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에서 철거민들과 진압 경찰의 충돌로 큰 불이 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용산참사`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강제집행 현장에서의 무력충돌과 인권침해 문제는 여전하다. 특히 강제집행 현장에 법 집행관뿐 아니라 세입자들을 내보내는 역할을 전문적으로 하는 경비업체의 배치가 늘면서 무력충돌과 인권침해 문제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경비업체의 강제집행 현장 배치 건수는 2014년에 10건에 불과했지만 △2015년 56건 △2016년 54건 △2017년 69건으로 크게 늘었다. 경비업체의 강제 집행 현장 집행 건수가 늘어나면서 집행 수칙들을 여겨 행정 처분을 받은 건수도 △2014년 231건△ 2015년 313건△ 2016년 298건 △2017년 286건으로 매년 300건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처분인 경비업체 취소 건수도 최근 5년간 평균 약 500건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강제집행 현장에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는 경비업체의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고 세입자들은 입을 모았다. 지난 4일 첫 강제집행이 진행된 개포주공 1단지의 세입자 측인 김소연 전국철거민연합 조직국장은 “지금도 경비업체 용역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세입자들을 위협하고 있다”며 “화장실에 사람이 있으면 그쪽으로 계속 돌을 던지는 등 세입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생을 장사만 해온 세입자들은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5번째 강제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 구 수산시장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4월부터 매번 강제집행이 진행될 때마다 법원 측 경비업체 용역과 구 수산시장 상인들은 크고 작은 충돌을 벌여왔다.

(자료=이재정 의원실)


지난 5일 방문한 수산시장은 강제집행을 예고하듯 이미 경비업체로 인해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34년간 장사해온 강모(72·여)씨는 “어젯밤 경비업체 용역들이 쓰지도 않는 공간의 물품을 시장 통로로 끌어다 놓아 아수라장이 됐다”며 “용역들이 상인들이 영업하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겨우내 강제집행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그나마 안심하고 있었는데 3월부터 강제집행을 시작하면 우리에게는 다시 겨울이 오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에는 강제집행에 반발해 세입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서대문구 아현2재구역에 거주 중이던 박모(당시 37세)씨는 강제 집행을 거부하며 극단적 선택을 했다. 박씨의 유서에는 “강제집행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라며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못하고 잘 곳도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서울시와 마포구청은 강제집행을 지난 2월28일까지 중단했다. 하지만 이번달 1일부터 재건축 공사를 재개했다. 아현2구역은 2016년 6월 관리처분 인가 후 재건축 사업에 착수했고 지난 8월 철거 작업을 시작해 총 24차례 강제집행이 이뤄졌다.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 아현2구역 가벽에는 “너희가 진압이면 우리는 투쟁이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아현2구역은 지난 2일부터 재건축 공사가 재개됐다. (사진=황현규 기자)


전문가 “임대주택 확충 등 다양한 주거권 보장 방안 필요”

전문가들은 강제집행을 경계하자는 사회적 분위기는 마련됐지만 세입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근본적으로 세입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남기범 서울시립대 건축사회학과 교수는 “재건축 공사 과정에서 세입자와 시공사·건물주 간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강제집행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주거·시민권 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강제집행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하지만 여전히 법적으로 세입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부족하다”며 “법적으로는 시공사와 건물주의 동의만 있으면 재건축이 허가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곳에 사는 세입자들은 갑작스럽게 주거권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또 “재건축 결정 당시 세입자들도 참여할 수 있는 협상테이블을 마련해 그들의 목소리도 반영해야 한다”며 “더 나아가 보상금만 쥐여주는 보상정책을 넘어 임대주택 확충 등 다양한 주거권 보장 방안도 정부가 고민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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