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경영학의 대부로 추앙받는 피터 드러커는 지난 1976년 펴낸 `보이지 않는 혁명(The Unseen Revolution)`에서 미국에서의 연금사회주의 도래를 과감하게 역설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급격히 늘어난 연금 납입금 덕에 몸집을 불린 퇴직연금은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빠르게 미국 대기업들의 지배적 소유자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를 목도한 드러커는 퇴직연금의 실질적인 주인인 노동자가 기업들을 지배하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불어난 퇴직연금이 오히려 앞다퉈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에게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을 강요했고 이는 주인인 노동자들의 이익에 반하게 됐다. 그렇게 연금사회주의는 현실화하지 않았고 이런 아이러니는 연금사회주의를 낡고 고루한 개념으로 퇴색시키고 말았다.
고작 1~2%도 안되는 지분을 가진 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의 입맛은 다 맞춰 주면서 국민연금기금만은 그래선 안된다는 논리는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다. 더구나 국민연금기금은 아직까지 자본시장법상 의결권 주식 5% 대량 보유시 공시해야 하는 5%룰과 10% 이상 투자 기업에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하면 6개월 내 단기차익을 반환해야 하는 10%룰에 묶여 있다. 5%룰은 2020년에 개정할 예정이고 10%룰에는 예외를 둘 수 없다는 게 금융당국 입장이고 보면 국민연금기금의 적극적 경영 참여는 상당기간 수월치도 않다.
물론 전(全)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해 일부 우려를 해소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모호한 경영 참여 기준을 보다 구체화할 필요는 있다. 판단 자체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만큼 기금운용위원회와 그 아래 수탁자책임위원회가 어떤 방식으로 경영 참여 여부를 결정할지 원칙을 세우는 편이 좋다. 또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상 정부 입김이 셀 수 있는 만큼 정부 영향력에서 벗어나 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위해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거버넌스를 개선하고 전문성 높은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과거 정권에서 정부 쌈짓돈 역할을 하거나 정책의 시녀 노릇을 했던 일들이 비일비재했으니 말이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업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젠 재계가 나서서 국민연금기금에 힘을 실어줘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