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우리나라에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가 없었더라도 경제성장률은 추세적으로 하락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성장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선 인공지능(AI), 신재생에너지 투자 등 과거 전기, 철도, 컴퓨터 등 경제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신기술에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관련된 신생 기업이 시장에 진입함과 동시에 한계 기업 퇴출도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 (출처: 한국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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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병훈 이화여대 부교수와 이남강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1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한국 경제의 추세 성장률 하락과 원인’이란 제하의 BOK 경제연구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1인당(생산가능인구 기준)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980년대 연 평균 7.5%에서 1990년대 5.5%, 2000년대 3.7%, 2010년대 2.3%로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2010년대 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들의 평균 성장률 1.4%보다 높고 상위 11위에 해당하지만 과거에 비해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짙다.
1인당 실질 GDP를 크게 총요소생산성(노동, 자본을 뺀 생산량 증가분), 자본, 노동(평균 근로시간, 고용률 등)으로 나눠 분석했다. 그 결과 가장 중점적으로 해결해야 할 요인을 총요소생산성으로 내다봤다.
일단 노동의 경우 1989년과 2003년 법정 노동시간 단축, 1990년대 토요일 오전 근무제, 격주 토요일 휴무제, 2004년 주 5일 근무 도입 등으로 평균 노동시간이 추세적으로 감소해 성장률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는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문화가 점차 형성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외환위기가 터지기 이전부터 성장률이 둔화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자본, 즉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과잉 현상을 보이며 성장률을 떠받치는 요인이 됐으나 2000년대로 넘어와 IT붐이 꺼지면서 설비투자 등이 감소세를 보였다. 2010년대 역시 금융위기 이후 대외 여건이 나빠지면서 불확실성에 기업 투자가 부진해졌다.
이에 따라 보고서에선 정책적으로 건드리기 어려운 노동, 자본보다는 ‘총요소생산성’ 둔화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고서는 “총요소생산성은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이 끝난 1989년을 기점으로 증가율이 감소했고 1994~1995년 반도체 호황으로 일시적으로 회복했으나 다시 외환위기 발생으로 급격하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2000년대에는 생산성이 높은 신생 기업의 시장 진입 비율이 감소했고 생산성이 낮은 기존 기업들의 퇴출도 줄었다. 2010년대에는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IT기술이 한계를 맞는 ‘생산성 역설’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보고서는 “추세 성장률 제고를 위해선 총요소 생산성과 관련된 경제 및 사회적 요인의 전반적 변화에 관심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며 “딥러닝을 포함한 인공지능과 기후 변화로 인해 주목받기 시작한 신재생에너지 등의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IT기술 기반으로 무형자산을 축적하면서 출현한 소수의 슈퍼스타 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강화되며서 신생 기업의 시장 진입이 어려워졌다”며 “생산성 높은 신생 기업의 시장 진출을 높이기 위한 특허 유효 기간, 투자 관련 조세 제도 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자 못 갚은 한계기업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한계기업은 노동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