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車업계 “생산기지 다시 짜야”…트럼프 관세폭탄에 복잡해진 셈법

FT, 관세부담 최소화 위해 현지생산 가속화 전망
NYT “자동차 업계 글로벌 공급체인 무너뜨릴 것”
폴크스바겐그룹 “합리적이라면 주저없이 현지화”
GM “수입車 관세 더 작은 GM 만들 것”…BMW “美일자리·투자 감소할 것”
  • 등록 2018-07-03 오후 2:26:52

    수정 2018-07-03 오후 3:34:54

/AFP PHOTO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차에 관세폭탄을 예고한 이후 불확실성이 커져서다. 유럽연합(EU)과 중국도 보복관세로 맞서겠다는 입장이어서, 각 회사마다 어느 곳에 생산기지를 둬야 관세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셈법이 복잡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일(현지시간) 미국이 수입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게 될 경우,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대대적인 생산체계 재편에 돌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자동차 산업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현지생산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포르쉐 최고경영자(CEO)이자 폴크스바겐그룹 생산책임자인 올리버 블룸은 이날 신문에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현지화가 합리적이라면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세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생산기지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블룸은 이어 “폴크스바겐그룹은 전 세계에 122개 공장을 두고 있다. 수요 및 (시장) 요구에 따라 언제든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최대의 유연성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은 EU가 미국의 수입차 관세 부과에 맞서 3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발표한 뒤에 나온 것이다. 제너럴모터스(GM)가 트럼프 대통령의 수입차 관세폭탄 발언 이후 잠재적인 글로벌 공급체인 변화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폴크스바겐그룹은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설명했다. GM은 지난달 29일 미국 상무부에 보낸 서한에서 “자동차 수입 관세는 GM을 쪼그라들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동차 및 관련 부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자동차 가격이 올라 자동차 수요가 줄고, 생산량 감소로 이어져 결국 일자리를 줄인다는 것이 GM의 주장이다. 독일 BMW가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그의 결정이 결국 미국에서의 실업률 증가와 해외자본의 투자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궤를 같이 한다.

그동안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운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최대 판매시장 가까이 생산기지를 설립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여기엔 자동차 부품을 더 싸게 공급받고 임금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경영방침도 반영돼 있다. 각 회사마다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복잡한 글로벌 공급체인을 형성하고 있다는 얘기다.

GM 역시 미국 내 연간 180만대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해외 공장에서도 연간 110만대의 차량을 생산해 미국으로 들여오고 있다. 문제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차량들이 수입 부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생산 과정에서 해외에서 들여오는 부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가 자동차 업계의 공급체인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생산기지 이전을 선포한 곳도 나왔다. 미국을 대표하는 오토바이 브랜드 할리데이비슨이 EU의 관세 인상에 생산기지를 미국에서 인도 또는 태국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미국 제조업 기업이 생산설비 해외 이전을 결정한 첫 사례로,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샀다. 하지만 할리데이비슨과 같은 기업이 계속 나올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생존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다.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경우 자국에서 판매하는 차량의 절반 가량을 해외에서 들여오며, 미 자동차 업체는 영국, 멕시코, 독일 등 현지서 생산한 차량의 80%, 82%, 78%를 해외로 판매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에 반발하고 있는 멕시코, 일본, 유럽 등은 미국 자동차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들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생산된 차량 중 해외로 수출되는 물량은 5분의 1에 불과하다.

자동차업계 분석업체 에버코어ISI의 아른트 엘링호스트 수석 애널리스트는 “관세를 부과하려 한다면 생산은 이를 피하려 하는 슬픈 현실”이라며 “만약 민족주의적 (보호무역) 경향이 지속된다면, 대규모 관세를 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관세를 물리는 곳에서 생산하는 방법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미국이 관세 부과를 강행하면 자동차 업계의 현지생산 현상은 가속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베른슈타인의 맥스 월버튼 애널리스트는 “자동차 산업보다 세계화의 혜택을 입은 산업은 거의 없다”면서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모두 글로벌 공급체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자동차 업체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토요타, 폴크스바겐 등 연간 차량 1000만대를 생산하는 회사들은 생산을 재편할 역량이 있다. 하지만, 연간 20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BMW, 다임러 등은 고객에게 더 가까이 접근해 생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볼보와 재규어 랜드로버 등처럼 100만대 미만의 생산 업체들은 피해가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체 규모나 주요 판매 시장이 어디냐에 따라 회사별로 셈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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