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發 환율전쟁 개시…아시아도 줄줄이 참전

스위스, 덴마크 만반의 준비 나섰다..`환율 방어`에 초점
아시아로도 번질 가능성..低유가가 정책 여지 넓혀
  • 등록 2015-01-20 오후 4:01:29

    수정 2015-01-20 오후 4:01:29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유럽 국가들이 일제히 한 곳을 바라보며 칼을 갈고 있다. 22일(현지시간) 유럽중앙은행(ECB)이 국채 등 대규모 채권 매입에 나설 것이 확실해지자 스위스,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바짝 긴장하며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럽 전체는 물론, 일본 등 아시아로 번질 조짐이다. 유럽발(發) 환율 전쟁의 서막이 오른 셈이다.

스위스에 이어 덴마크까지 ‘환율 방어’

지난주 스위스 중앙은행(SNB)은 자국 통화인 프랑에 대한 환율 하한선(유로당 1.20프랑)을 폐지하는 깜짝 결정을 내렸다. 마이너스 예금금리도 확대해 -0.25%에서 -0.75%로 무려 0.5%포인트나 낮췄다.

ECB의 대대적인 돈 풀기로 유로화 가치가 급락할 것으로 예측되자 더 이상 유로화 대비 프랑 가치를 끌어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일종의 백기투항이었다. 그러나 환율 하한제 폐지 이후 프랑이 한꺼번에 유로화 대비 40%가량 급등하는 등 통제권을 벗어나자 스위스는 한 발 후퇴한 모습을 보였다. 스위스 중앙은행의 토마스 요르단 총재는 “필요할 경우 외환시장 개입을 재개하겠다”며 “마이너스 예금금리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만큼 프랑에 대한 매력을 다소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덴마크도 행동에 나섰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19일 예금금리를 -0.05%에서 -0.2%로 0.15%포인트 기습 인하했다. 대출금리도 0.2%에서 0.05%로 내렸다. 덴마크 역시 자국 통화인 크로네가 유로대비 상승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덴마크는 스위스처럼 환율 하한제를 폐지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덴마크는 유로화 대비 크로네 환율 변동폭을 ±2.25%(유로화 대비 7.62824~7.29252크로네)로 제한해놓고 있다.

덴마크 단스케 방크의 스틴 보시안 글로벌 리서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적어도 한 번 더 금리를 내리거나 적어도 0.1%포인트 가량 추가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스위스와 덴마크는 경상수지 흑자폭이 커 투자자들에겐 안전 피난처(safe haven)로 분류되고 있다. 자본유입이 지속되면서 환율을 방어하기 위한 외환시장 개입이 대폭 증가, 외환보유액 규모도 점점 불어났다. 덴마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외환보유액이 두 배나 급증했고, 스위스도 환율 하한제를 실시했던 3년여 동안 두 배 가량 급증했다.

스웨덴 노르웨이 아시아까지 번질 수도

이러한 행보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의 다른 유럽국가에도 번져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자율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스웨덴은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0.0%로 낮춘 후 동결해왔으나 다음 달쯤 마이너스 예금금리를 도입하거나 외환시장 개입을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스테판 잉베스 스웨덴 중앙은행 총재는 의사록을 통해 밝혔다.

노르웨이 역시 지난달 기준금리인 하루짜리 예금금리를 2년 9개월만에 1.25%로 0.25%포인트 낮췄다. 다만 산유국인 노르웨이는 국제유가 급락에 이미 크로네 가치가 하락하고 있어 스위스, 덴마크와는 상황이 다르다.

닐 멜러 BNY멜론 외환 전략가는 “스웨덴의 비전통적인 통화정책 등으로 노르웨이가 금리 인하 등 압박을 받을 수 있지만,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며 “이것이 환율 전쟁”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수순은 유럽 지역의 문제만은 아니다. 아시아 국가들도 경제가 성장 궤도에 올라서지 않은 상황에서 국제 유가 급락이 금리 인하 등 완화적인 통화정책에 대한 공간을 넓혀주고 있다. 인도는 지난 주 기준금리를 1년 8개월만에 8.0%에서 7.75%로 깜짝 인하했다. 중국 인민은행도 예대율을 낮추면서 8080억위안(약 150조원) 규모가 시중에 풀렸다. 일본은행(BOJ)도 최근 특별대출프로그램을 연장한데 이어 상장지수펀드(ETF) 등 위험자산을 추가 매입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고바야시 신이치로 미쓰비시UFJ 리서치 및 컨설팅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1일 통화정책회의에선 정책 변화가 없겠지만 4월쯤 광범위한 양적완화 정책이 실시될 것”이라고 점쳤다.

일부에선 ECB의 대규모 돈 풀기에 앞서 주변국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지만, 상황이 반전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헤지펀드인 SLJ매크로파트너스 스티브 젠 공동설립자는 “유로존 이웃들이 너무 단단한 모자를 쓰고 있다”며 “ECB가 시장을 실망시킬 위험이 크다. 이 경우 금융시장은 상당히 위축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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