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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10대들은 ‘경의선 키즈’라고 불린다. 일본에서 성매매로 돈을 버는 등 비행을 일삼는 가출 청소년 ‘토요코 키즈’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10월, 한 유명 유튜버가 공주풍의 옷을 입고 경의선 책거리에서 조건만남을 하는 청소년 2명을 인터뷰한 영상이 화제였다. 다수 언론은 해당 영상을 바탕으로 자극적인 온라인 기사를 연일 발행했다. ‘경의선의 아이들은 조건만남을 한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그러나 실제로 만난 아이들은 또래 중고등학생과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뿐이다. 하이니티는 ‘경의선 키즈’가 모인다고 알려진 경의선 책거리에 나가 지난 3월 4주간 50명의 청소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 경의선의 ‘지뢰계’ 청소년들을 만나다
“저는 지뢰계예요.”
고등학생 A양(17)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지뢰계는 본래 ‘지뢰처럼 밟으면 터진다’는 뜻의 일본 신조어다. 정신건강이 불안정해 가까이하면 위험한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하지만 경의선에 모인 청소년들은 이를 일본의 영향을 받은 ‘패션’의 일종으로 인식했다. “일본 여행을 갔다가 일본 지뢰계가 입는 옷에 반했다”고 밝힌 A양은 “지뢰계는 검정을 주된 색으로 한 공주풍의 옷을 입는다”고 설명했다. 17세 때부터 지뢰계 활동을 했다는 20세 B씨는 “지뢰계 패션의 컨셉은 ‘쿠로미’(일본 오락기업 산리오의 캐릭터)를 떠올리면 된다”며 ‘자신도 쿠로미의 의상이 예뻐서 따라입고 싶었다’고 전했다.
남들과 ‘다른’ 옷을 차려입었지만 이들은 ‘평범한’ 10대였다. 중학생 C양(15)은 “옷을 이렇게 입었을 뿐 (노는 법은) 또래와 다르지 않다”며 “친구들과 함께 예쁜 카페나 소품샵, 노래방에 가곤 한다”고 했다. 경의선에 자주 온다는 중학생 D양(14)은 “예쁜 옷 입은 걸 자랑하고 싶어서 틱톡을 찍곤 한다”고 했다. 지뢰계 청소년에게 경의선은 관심사가 같은 또래와 만나 교류하는 장소일 뿐이다.
경의선 책거리에 순찰을 나갔던 마포경찰서 관계자는 “경의선에 온 아이들이 틱톡 영상을 만들기 위해 모여서 춤 연습 장면을 촬영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문제 행동을 하는 청소년을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경의선 책거리에서 상담부스를 운영했던 마포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이하 상담센터) 관계자는 지뢰계 청소년에 대해 “또래와 다름없이 학교, 진로, 친구, 가족관계 등을 고민하는 청소년”이라고 말했다.
“조건만남을 하는 사람은 지뢰계들 사이에서도 배척하는 분위기에요.”
고등학생 오모양(17)은 유튜버의 인터뷰 영상으로 단 두 명의 비행이 지뢰계 전체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 것에 불만을 표했다. 오양은 “여느 집단과 마찬가지로 (지뢰계를 하는) 모두가 착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착한 이들도 많다”며 “유튜버의 영상은 지뢰계 전체를 섣불리 일반화했다”고 지적했다.
하이니티가 현장에서 만난 모든 학생들에게 술, 담배, 가출, 조건만남 등 청소년 비행으로 손꼽히는 것들을 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대부분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50명의 학생 중 술, 담배, 가출을 해봤다고 답한 이는 각각 5명, 6명, 5명이다. 10명 중 1명 꼴이다. 유튜버의 영상과 언론이 특히 주목했던 조건만남의 경우, 50명 중 3명의 학생만이 ‘해본 적 있다’고 답했다. 고등학생 황모양(19)은 “나와 내 주위는 모두 옷이 예뻐서 지뢰계를 시작했다”며 “지뢰계 옷을 입고 있지만 학교 생활도 성실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학생”이라고 밝혔다. 고등학생 E(19)양은 “지뢰계 패션과 그 사람의 성품은 별개”라며 “지뢰계 옷을 입는 아이들이 비행을 저지른다는 말은 옳지 않다”고 했다.
자신들에게 붙은 ‘경의선 키즈’라는 이름에 불만을 가진 청소년도 있었다. 중학생 F양(15)은 “경의선 키즈라는 표현 자체가 경의선에 모인 아이들이 토요코 키즈처럼 비행을 저지른다는 것을 전제한 것 아니냐”며 억울함을 표했다. 중학생 G양(16)은 “경의선 키즈는 너무 과한 표현인 것 같다”며 “경의선 책거리는 지뢰계에게 비행의 장소가 아니라 산책로 혹은 모임장소일 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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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으로 내몰린 지뢰계 청소년
상담센터 관계자는 “유튜브와 각종 언론이 경의선 책거리를 위기청소년이 모이는 장소로 보도한 이후 (성인이) 아이들에게 위협적인 태도로, 성적 목적을 갖고 접근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범죄로부터 경의선의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함을 역설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튜버의 영상 이후 거점 근무 등 집중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비행 ‘낙인’ 아닌 ‘인정’ 필요해
“지뢰계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아요.”
지뢰계 청소년이 원하는 건 ‘이해’보단 ‘존중’이다. 황양은 “대놓고 성희롱하고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들만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양은 “따뜻한 시선을 바라지 않을 테니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선입견을 갖고 청소년의 성장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경찰 관계자는 “지뢰계 문화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직, 간접적으로 관찰한 후에 그것과 유사하게 행동하는 청소년기의 모방문화가 또래문화로 연결되며 확산한 것”이라며 “청소년들의 놀이문화 중 한 단면을 비행에 노출된 것으로 확대해석하고 있다”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청소년기에 ‘위험추구행위’를 통해 자신의 다양한 가능성을 알아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이 시기에 시도하는 것들을 섣불리 비행이나 탈선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고도 했다. 곽 교수는 “청소년도 판단할 줄 아는 성숙한 개체”라며 “기성세대의 틀에 맞춰 아이들을 바라보지 말고 현재 청소년들의 다름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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