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도박은 성공했지만…칼날위에 선 치프라스

그리스 내부 反긴축여론 등에업고 투표서 승리
쉽지않은 협상 남아…타결불발 땐 정치생명 위험
  • 등록 2015-07-06 오후 3:57:28

    수정 2015-07-06 오후 3:59:59

5일(현지시간) 국민투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사진:블룸버그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의 승부사적 기질이 통한 걸까. 알렉시스 치프라스(41·사진) 그리스 총리가 정치적 생명을 건 도박에서 일단 승기를 잡았다.

5일(현지 시간) 그리스에서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그리스 국민은 압도적인 표차로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안을 거부했다. 국민투표 최종 개표결과 반대가 61.3%로 찬성(38.7%)보다 22.6%포인트 많았다. 채권단과 협상을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반대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그의 설득이 먹힌 결과다.

그리스 국민은 2010년부터 5년간 계속된 긴축에 지쳐 있다. 채권단 요구대로 긴축정책을 폈는데 경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2009년 2640억달러였던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은 25% 이상 쪼그라들었다. 실업률은 25%가 넘고 특히 청년 둘 중 한 명은 실업자 신세다. 반면 연금을 포함한 복지지원은 갈수록 줄어든 상태다. 채권단의 추가긴축요구에 대해 반발여론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얘기다.

치프라스 총리는 채권단과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갚을 수 있을 만큼 빚을 줄이라는 요구를 멈추지 않았다. 마감시한을 앞두고 채권단과 협상이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자 지난 25일 채권단이 제시한 구제금융 협상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면서 승부수를 걸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가져올 경제적 후폭풍에 대한 걱정이 커지면서 겉으로 드러난 민심은 찬성여론이 반대보다 10% 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이에 따라 그리스를 판돈으로 무모한 도박을 감행했다는 안팎의 비판도 쏟아졌다.

치프라스 총리는 그리스 내부의 반(反) 긴축 여론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채권단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지금과 같은 빚쟁이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란 논리를 폈다. 또 투표 직전까지 국제통화기금(IMF)부채의 30%를 탕감해 줄 것과 나머지 70%에 대한 상환도 20년간 연기해 달라고 요구했다.

여론도 그의 설득에 반응했다. 시간이 가면서 반대여론이 확산했고 결과적으로 압도적 표차로 승리를 거두게 됐다. 그리스 내부에 응축된 반(反)긴축 정서를 정확하게 읽어낸 치프라스의 승부수가 먹혔다는 평가다.

투표 승리 이후 치프라스 행보에는 힘이 실릴 전망이다. 일단 국민적 지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하면서 내적인 동력을 확보했다. 최악의 경우 유로존에서 탈퇴하더라도 정치적 부담감은 예전보다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TV를 통해 “그리스는 역사적 걸음을 내디뎠다”며 협상의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일단 국민투표까지는 의도대로 됐지만 남은 건 앞으로다. 구제금융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리스의 숨통을 쥐고 있는 것은 독일을 포함한 채권단이다. 채권단이 지원을 끊는다면 그리스 금융시스템이 버텨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재정규율을 지키라는 압박을 해온 독일이 어느정도 양보카드를 내밀지도 불확실하다. 독일 의회는 그리스의 구조개혁 없이는 한 푼도 지원할 수 없다는 강경론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게다가 채권 만기는 줄줄이 예정돼 있다. 당장 유럽중앙은행(ECB)에 이달 20일까지 35억유로(약 4조3462억원)를 갚아야 한다. 이 기간 채권단과 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한다면 채무불이행(디폴트)가 현실화하면서 국가부도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현실로 되는 것을 뜻한다. 이럴 경우 치프라스의 정치적 생명도 장담할 수 없다. 치프라스 총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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