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황현이기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상당 기간"이라는 문구를 돌연 철회하면서 신흥국가 증시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신흥국 증시에 대한 막대한 자금 유입을 유도했던 미국의 저금리 기조가 이를 기점으로 조만간 막을 내릴 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대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한국을 위시한 이들 증시는 강력한 상승세에 환호했지만 그 기반은 FRB의 사소한(?) 문구 변경에 출렁일 정도로 허약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입니다. 이들 증시가 과연 금리 상승과 동반할 소지가 있는 급작스런 해외자금 이탈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지 국제부 황현이 기자가 묻습니다.
신흥시장에 대한 자금 흐름이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를 나타낸 뒤 새해 들어서도 아직 마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머징포트폴리오닷컴에 따르면 1월 둘째주까지 이들 시장으로 순유입된 규모가 1억3200만달러에 달하고, 이 가운데 8억7890만달러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펀드에 투입됐습니다.
45년래 최저 수준인 미국의 연방기금금리와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유로권의 정책금리에 기반, 자금을 낮은 비용에 조달할 수 있게 된 투자자들이 안정성이 낮아 저평가돼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성장성이 높은 투자처를 찾아 모여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자금 유입은 한계를 의식하지 않는 "돌진" 수준이어서 자연스럽게 과열 논의를 부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 유수의 정계 및 재계, 학계 인사들이 집결된 제34회 다보스포럼에서는 신흥시장 과열이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신흥시장 과열론에 반박하는 이들은 신흥국가들의 펀더멘털적인 조건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올해 신흥국 경제성장이 선진국을 워낙 앞서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이에 따른 과실을 기대하는 투자가 이뤄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죠.
중국의 경우 지난해 4분기 9.1%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는데 이마저도 과열 여론을 의식해 낮춰서 제시한 수치라는 관측이 따라다니는 정도로 신흥국의 성장세는 사실 대단합니다.
그러나 이들 시장에 대한 투자는 아주 근본적인 차원에서 과열이고 "투기"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올해 신흥시장, 그 중에서도 아시아, 아시아에서도 한국을 최고의 투자처(top pick)으로 꼽고 있는 펀드 매니저들의 단골 설명을 들어볼까요.
"삼성전자 등 우량주가 현저히 저평가돼 있는 데다가 한국 등 아시아 경제는 경기순응적(cyclical)인 특성이 대단히 높다"
바꿔 말해 경기 상승세가 둔화될 기미가 보일 경우 이들 증시에 대한 투자매력은 당장 최하위권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세계의 증시 지형도에서 신흥국이 "경기민감형"으로 저금리시대에 가장 유효한 투자처라면, 주요국 중앙은행이 긴축으로 돌아서는 조정기에는 "경기방어형"인 선진국으로 갈아타는 것이 가장 유효한 전략이라는 관점이 내포돼 있는 것으로 읽혀집니다.
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외국인 자금의 순유입(유입-유출) 규모는 135억2000만달러로 1992년 자본시장 개방 이후 사상 최대치를 나타냈고, 이에 따라 이에 따라 거래소 및 코스닥 주식의 외국인 보유비중은 2003년 말 현재 각각 40.5%와 15.2%로 상승했습니다.
금리 등 조건에 따라 세계 금융시장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외국인의 국내 증시에 대한 영향력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확대된 셈입니다.
같은 자료에서 외국인의 거래소 주식매매회전율은 73.8%로 시장전체 평균을 하회, 장기투자 성향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와 있지만 과거의 패턴은 미래의 동향에 대한 어떠한 보장도 해주지 못합니다.
국제 투자자금을 운용하는 이들과 한국 등 신흥시장과의 물리적 관계가 극도로 미미한 이상 이들은 어디까지나 차가운 수익성의 논리에만 복종하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국 자금의 이탈로 인해 반토막이 날 수도 있는 한국 증시와 그 여파를 떠안아야 할 "우리들"은 다릅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사돈의 팔촌이 당장 빚더미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증시에서 (다시 한번) 된서리를 맞은 부동자금이 결국 "불패" 부동산에 대거 집중돼 모두가 집값 폭등에 신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는 외국자금을 지켜 보면서, 안전판 마련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