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은 발타사 스테헬린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총재 특사 겸 동아시아 지역사무소 대표단장은 이데일리와 만나 ICRC의 인도적 활동을 설명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ICRC는 1863년 전쟁 등으로부터 피해자를 돕기 위해 설립된 인도주의 단체다. 스테헬린 단장은 30년 넘게 중동·아프리카·발칸반도 등에서 구호 임무를 수행한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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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인도적 재난, 말할 수 없이 심각”
7개월 넘게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상황을 묻자 스테헬린 단장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아주 재앙적이다. 아주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어서 인도적으로 큰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며 “식량과 식수가 부족하고 위생이 확보되지 않는다. 의료용품도 없다. 제일 걱정인 건 (민간인) 안전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 중에 적신월사(이슬람권의 적십자사)와 자원봉사자 17명도 목숨을 잃었다. 특히 팔레스타인 피란민이 밀집한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서 이스라엘이 지상군 투입을 강행하면서 ICRC를 비롯한 국제사회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는 그러면서도 “중요한 건 우리나 다른 인도주의 기관이 무얼 하든 (난민을 돕기에) 부족하다. 인도적 재난의 정도가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며 “지속 가능한 인도적 지원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구축되지 않는 게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ICRC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에 각각 인질, 억류자 접견을 요청했지만 양측 모두 이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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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분야서도 전쟁법 원칙 지켜져야”
스테헬린 단장은 최근 빠르게 발달하고 있는 AI 무기나 사이버 무기 등에 대해서도 국제인도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술이 전장을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민간인이 고통받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며 “전쟁을 할 때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원칙, 즉 전쟁법이 디지털 분야에서도 적용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율무기의 예를 들며 어떤 경우에도 기계나 소프트웨어에 공격 결정권을 맡겨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ICRC는 신무기에도 국제인도법을 적용하기 위해 각국 정부, 기술기업뿐 아니라 해커들과도 소통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철수한 ICRC 평양사무소 재개설 여부를 묻자 스테헬린 단장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 어렵지만 북한 적십자사와 정기적으로 접촉하고 있다”며 “(상황이) 가능해진다며 언제든 북한에 들어가서 상황을 점검하고 정규 업무를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