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는 러시아 주요 에너지 기업과 방위산업체 등의 유럽 자본시장 접근을 차단하는 내용이 핵심인 대(對) 러시아 신규 제재를 이날 관보에 게재했다. 제재는 관보 게재 후 즉각 발효됐다.
EU는 러시아 에너지 기업 3곳과 방위산업체 3곳, 은행 5곳 등이 유럽 자본시장에서 만기 30일 이상의 채권을 발매하거나 주식을 매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번 신규 제재로 러시아의 대형 에너지 기업인 로스네프티, 트란스네프티, 가스프롬네프티가 유럽에서 자본을 조달하기 어렵게 됐다.
미그 전투기 및 수호이 전투기 등을 만드는 통합항공사와 탱크 제조업체 우랄바곤자보드, 헬리콥터 제조업체 오보론프롬 등 러시아 주요 방위산업체도 제재 명단에 올랐다.
앞선 제재에서 유럽 금융시장 접근을 제한당했던 스베르방크, 대외무역은행(VTB), 가스프롬방크, 대외경제개발은행(VEB), 러시아농업은행(로스셀호즈방크) 등 5개 은행도 목록에 포함됐다.
이번 제재에선 군수물자로 전용될 수 있는 전자 제품 등 이중용도품목의 수출규제도 강화됐다.
AK-47 소총으로 유명한 러시아 방산업체 칼라시니코프사와 지난 7월 우크라이나 반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를 격추할 때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부크’ 지대공 미사일 제조사 등 9개사가 수출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이 기업들에 EU 회사들이 이중용도 제품이나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금지된다.
EU는 아울러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지도자와 러시아 정부 인사와 기업인 등 24명에 대해 EU 회원국 입국을 금지하고 자산을 동결했다.
도네츠크주 분리주의자들이 선포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총리 알렉산드르 자하르첸코와 국방장관 블라디미르 코노노프, 돈바스(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민병대 지도자 미로슬라프 루덴코 등이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러시아의 극우민족주의 성향 정당 자유민주당 당수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국영기업 로스텍의 대표인 세르게이 체메조프도 이름이 올랐다.
체메조프는 푸틴이 옛 소련의 비밀경찰인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일할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로스텍은 러시아가 지난 3월 우크라이나로부터 합병한 크림에 발전소를 건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로써 EU로부터 여행 금지·자산 동결 등의 제재를 받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인사는 총 119명으로 늘어났다.
헤르만 반 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달 말 우크라이나 휴전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나서 추가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EU 추가 제재 소식이 알려지자 러시아 통화 루블화의 달러 대비 환율이 전날 종가보다 20 코페이카(루블 이하 단위)나 올라 역대 최고치인 37.72 루블까지 치솟는 등 모스크 증권 시장이 동요했다.
러시아 정부는 EU의 추가 제재 발표에 반발하며 보복 조치를 경고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자국 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EU는 러시아와 러시아 인사들에 대한 신규 제재를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 노력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평화 협상이 안정성을 얻어가고 있는 시점에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것은 협상을 방해하는 길을 택한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라브로프는 ”러시아는 EU의 추가 제재에 대해 우리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차분하지만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보복 조치로 EU산 중고 자동차의 수입을 금지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