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중 직원 추락사…法, 업체 대표에 벌금형 집행유예

화학약품에 떨어진 직원, 전신에 화상
사고 막기 위한 조치 미흡해
50명 미만 업체로 중대재해법 대상 제외
  • 등록 2024-03-20 오후 2:02:01

    수정 2024-03-20 오후 2:02:01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화학 약품 시설에서 안전조치를 소홀히 해 직원을 숨지게 한 혐의로 폐기물중간처리업체 대표 A(52)씨가 벌금 800만원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사진=이소현 기자)
서울북부지법(재판장 이창원)은 지난 14일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20일 밝혔다. 그가 운영하던 업체에도 벌금 800만원이 선고됐다.

A씨는 경기 광주시에서 업체를 운영하면서 안전시설 관리를 소홀히 해 직원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그의 업체에서 일하던 피해자는 지난해 6월 22일 오전 7시 40분쯤 화학물질을 분사해 배기가스를 정화하는 깊이 1.9m의 세정탑에 담긴 약품의 투입상태를 확인하다가 그 안으로 떨어졌다. 세정탑 안에는 피부에 닿을 경우 심한 화상을 일으킬 수 있는 수산화나트륨 혼합액이 1.1m 높이로 차 있었다. 이 일로 피해자는 전신의 93% 면적에 2~3도 화상을 입었고, 패혈증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고 닷새 뒤인 27일 숨졌다.

산업안전보건법상 A씨는 사고 현장에 추락방호망을 설치하고, 추락방호망을 설치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근로자에게 안전대를 착용하도록 하는 등 사고 위험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했다. 또 피해자의 추락을 막기 위해 사고 현장에 중간 난간대를 2단 이상 설치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 설치된 중간난간대는 1단으로만 설치돼 있었다.

앞서 A씨 측 변호인은 “피해자가 세정탑 안으로 떨어지고, 이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원인은 그의 기저질환에 의한 것을 수 있다”며 “업무상 과실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의 발생일은 (기저질환으로 인한) 휴직일로부터 9개월 정도 지난 시점일 뿐 아니라 사고 당시 피해자가 다른 직원들에게 기저질환에 의한 고통이나 작업능력 저하를 호소한 정황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정들을 종합할 때 피고인들의 과실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해자의 유족과 합의했고, 유족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A씨에게 벌금형 1회 외의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했다”고 양형 사유를 판시했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산업안전 조치 미비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50인 미만(5~49명) 사업장은 공포 뒤 2년 동안 법 적용을 유예받아 2024년 1월 27일부터 해당 법이 적용됐다. A씨의 업체는 사고 당시 상시근로자가 30명 고용된 업체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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