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휘오이~휘오이’
지난 13일 제주도 서귀포시 법환포구. 저 멀리서 휘파람 소리가 고요히 들려온다. 돌고래가 우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사람이 내는 소리다. 해녀(海女)들이 잠수한 후 물 위로 나와 숨을 고를 때 나는 숨소리다. 약 1~2분가량 잠수한 뒤 내뱉는 ‘숨비소리’는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들린다. 수압을 견뎌내느라 삭신은 고장 났지만, 살기 위해 내뱉어야 하는 해녀의 숨소리이기 때문이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해녀 속담도 해녀의 고달픈 삶을 잘 말해준다. 15~20m 바닷속에 들어가 수산물을 채취하는 해녀의 ‘물질 작업’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얘기다.
|
사라져 가는 숨비소리…50대 이상이 대부분
힘겹고 고된 일인 만큼 해녀의 물질을 배우는 사람은 급격히 줄고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현직 잠수어업인은 제주시 2485명, 서귀포시 1930명 등 총 4415명만 남아 있다. 1970년 1만 4143명에서 3분의 1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이마저도 대부분 50대 이상으로 고령화됐다. 머지않아 해녀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여 있는 셈이다.
해녀 공동체는 배려와 질서의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일례로 제주도의 각 어촌계에서는 ‘할망바당’이란 게 있다. 앞바다의 수심 얕은 곳은 힘없고 나이 든 해녀의 바다다. 힘 좋고 기술 좋은 ‘상군(上群)해녀’는 좀 더 멀리 깊은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한다. 상군 해녀들은 자신이 잡은 전복이나 소라를 나이 든 해녀에게 남모르게 망사리에 건네주기도 한다. ‘게석’이라는 그들 특유의 문화다.
생리하는 해녀는 알아서 물질에 나서지 않는다. 피 냄새를 맡고 상어떼가 몰려오면 해녀 모두가 위험에 처해지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해녀들이 그날 채취한 해산물을 골라 나눠준다.
강권용 해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해녀는 수산물 채취를 통해 가정경제의 주체적 역할을 한 여성생태주의자(Eco-Feminist)라고 할 수 있다”며 “여성, 자연, 노약자, 생태계 등 해녀가 가진 가치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부각되야 한다”고 말했다.
|
해녀의 명맥을 잇자…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 움직임
다행히 해녀의 명맥을 잇고, 전통성을 이어나기 위한 움직임이 부단하게 일고 있다.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어촌계에 가입해 일정기간 인턴 해녀 과정을 거친다. 어촌계에서 인정받으면 ‘아기 해녀’로 거듭날 수도 있다.
해녀학교 학생 박은실(32·여)씨는 서울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해녀 학교에 왔다. 그녀는 “부모의 반대가 심했지만 내가 직접 해산물을 캐서 먹고 싶다는 생각에 해녀학교에 왔다”면서 “쉽지 않겠지만 잘 배워서 제주도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
정부와 제주도는 해녀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 문화재청은 제주해녀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등재 여부는 내년 하반기에 판가름난다.
강 연구사는 “바다 밭 공존의 터전으로 가꾸는 여성생태주의자인 해녀의 가치는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하는 만큼 등재 가능성은 90% 이상”이라면서 “해녀의 가치가 높아지고 명맥이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