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150엔’ 저렴해진 日…“인재·자본 유출 등 국력저하 우려”

日기업 대부분 해외에 생산기지…엔저 브레이크 역할 못해
경상수지 적자→자본유출→엔저 가속화 '악순환' 우려
엔저 따른 대외 구매력 약화…"해외로 인재유출 가능성"
엔저 부작용 이미 가시화…9월 물가, 31년래 최대폭 상승
日정부 "과도한 변동엔 적절히 대응" 시장개입 시사
  • 등록 2022-10-21 오후 5:12:44

    수정 2022-10-21 오후 5:12:44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일본 엔화 가치가 32년 만에 150엔까지 떨어지면서 일본의 경제 경쟁력, 나아가 국력까지 약화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42년 만에 처음으로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저렴해진 엔화보다 달러화 등의 급여를 선호하는 핵심 인재들의 해외 유출이 우려되고 있어서다. 엔저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으로 소비자물가마저 31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아 경제 부담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진단이다.

(사진=AFPBB/로이터)


경상수지 적자→자본유출→엔저 가속화 ‘악순환’ 우려

21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전날 오후 달러·엔 환율이 ‘거품(버블) 경제’ 후반기였던 1990년 8월 이후 32년 만에 처음으로 달러당 150엔을 돌파한 것과 관련, “엔저로 수출이 늘어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수입 비용이 크게 부풀어오르는 단점만 부각되고 있다”며 “너무나도 값이 싸진 엔화는 자본 및 인재 유출로 이어져 국력을 저하시킬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과거에는 일본 기업들의 생산기지가 대부분 국내에 있었던 탓에 엔저는 일본 경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외 가격경쟁력 강화로 기업들의 수출이 늘고 벌어들인 외화를 다시 엔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엔저 압력을 막아줬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대다수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면서 환전을 위해 엔화를 사들이는 일이 크게 줄었다.

엔저에 제동을 걸어줄 수단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관광 수입 등이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아 큰 기대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 결과 에너지와 식품을 수입하는 비용 부담만 커지고 있다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일본의 식량 자급률은 40% 미만이며,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0%를 웃돈다. 특히 국제유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 간 갈등으로 앞으로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엔저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면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일본은행(BOJ)이 저금리·금융완화 정책을 고수하면서 촉발됐다. BOJ가 통화정책을 변경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연준이 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동안에는 엔저가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상수지도 42년 만에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닛케이가 1달러=150엔을 전제로 추산한 결과 유가가 100달러까지 오르면 지난해 12조엔을 기록했던 경상수지 흑자는 2023~2024년 1조~3조엔으로 대폭 줄어들고, 유가가 120달러까지 치솟으면 적자로 전환할 것으로 예측됐다.

일본은 이미 7월과 8월 2개월 연속 경상수지(계절조정치) 적자를 기록했다. 닛케이는 “경상수지 적자는 일본에서 자본이 해외로 유출된다는 의미”라며 “이는 엔저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인재 유출도 문제다. 엔저는 대외 구매력이 그만큼 떨어져 소비자 부담이 확대된다는 의미다. 닛케이는 엔화의 대외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이 1973년 이전 1달러=360엔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에서 더 좋은 급여를 제시할 경우 노동력이 빠져나갈 수 있다. 일본은 이미 고령화·저출산 등으로 경제활동 인구 급감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협력기구(JICA)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오는 2040년엔 지금보다 약 500만명을 추가 수용해야 한다.

(사진= AFP)


에너지·식품 수입비용 상승→31년래 최대폭 물가 상승

엔저에 따른 구매력 저하 및 소비자 부담 확대는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에너지·식품 수입 비용 급증은 고스란히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일본 총무성은 이날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대비 3.0%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14년 9월 이후 가장 큰 폭의 물가 상승률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의 CPI 상승률이 10%에 안팎을 기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지만, BOJ의 인플레이션 목표인 2%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NHK방송은 소비세율이 5%에서 8%로 인상돼 물가지수에 반영된 2014년 4월을 제외하면 1991년 8월 이후 31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엔저 및 이에 따른 물가 상승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시장에선 1달러=150엔선이 완전히 무너지면 일본 정부가 개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금융당국은 지난달 22일 환율이 달러당 145.90엔까지 올랐을 때 24년만에 달러를 팔아 엔화를 사들이는 개입을 단행했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이날 “투기에 의한 과도한 변동은 용인할 수 없다. 외환시장의 동향을 긴장감을 느끼며 주시하는 동시에 과도한 변동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응을 취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며 개입 의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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