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 옆에 있는 삼표레미콘 공장이 설립된 지 40년 만에 철거됩니다. 지난달 18일 서울시가 공장 부지 소유주인 현대제철(004020), 운영업체 삼표산업과 2022년 6월까지 공장을 철거하기로 협약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 반색·삼표, 난색…현대제철, 매각 방식 고민 중
서울시는 2004년부터 해당 부지를 서울숲으로 개발하려고 했던 만큼 숙원을 풀었습니다. 벌써 공장 부지는 물론 사용하지 않고 있는 주변 승마장, 유수지를 모두 포함해 복합 공원을 조성하겠단 방침도 밝혔습니다. 반면 삼표산업은 난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레미콘이 굳지 않은 상태로 시내 곳곳에 이동시키기 위한 최적의 위치가 성수동인 탓입니다. 대안을 찾는다 해도 소음과 매연이 발생하는 레미콘 공장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철거 기일을 오는 2022년 6월로 5년 유예한 것도 이처럼 삼표산업이 새 공장 부지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공장 이전 협약의 세 번째 주체인 땅 주인 현대제철은 서울시에 부지를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시(市)는 부지를 사거나 성수동 부지에 상응하는 시유지를 넘겨줘야 합니다. 현대제철은 이같은 매입과 교환이란 거래 방식 중 어느 것이 더 유리할지 심사숙고하고 있습니다. 현대제철은 이번 협약으로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요.
지난 2014년 9월 18일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015760) 본사 부지가 현대자동차(005380)그룹에 낙찰됩니다. 낙찰가는 무려 10조5500억원. 감정가 3조3346억원의 약 3배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이날 한전 주가는 부지가 낙찰되기 이틀 전에 비해 약 12% 급등한 4만6400원에 마감했습니다. 현대차 그룹은 이후 몇 번에 걸쳐 부지 매각대금을 수납했고 그 때마다 한전 순이익은 크게 늘었습니다. 특히 2015년 3분기 당기순이익은 전년동기대비 무려 491.2%가 늘어 9조2764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부지 매각이 아니었다면 기록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당시 여러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하나같이 “본사 부지 매각 대금 유입에 따른 재무구조 개선과 이에 따른 선순환 구조 돌입”이란 표현을 쓰며 추천주로 한국전력을 꼽았습니다. 그러나 주가는 오르지 않았습니다. 한전 실적이 지나치게(?) 개선되면 전기료 인하로 이어져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기료 인하 이슈가 부각하면서 주가가 되레 주춤하는 기현상이 발생했습니다. 한전이란 공기업이 가진 특수성 탓입니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당기순이익 491.2% 증가는 굉장한 호재로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대 부지 3473억 추정, 매각시 호재…市리스크는 우려
현대제철이 매입 방식으로 시와 거래할 경우 얼마에 성수동 땅을 팔 수 있을까요. 기업은 재무제표를 통해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규모를 밝히고 있습니다. 사업을 위해 직접 사용하는 부동산은 유형자산 항목에, 여유자금을 운용하려고 취득한 부동산은 투자부동산 항목에 각각 나타냅니다. 기업이 보유한 모든 부동산의 총액을 표시하기 때문에 정확한 성수동 부지 가격은 알 수 없겠으나 최소한 현대제철 부지가 이보다 적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현대제철은 삼표산업에 땅을 빌려주는 대가로 임대료를 받기 때문에 성수동 부지를 투자부동산 항목에 표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작성된 현대제철 감사보고서의 투자부동산 공정가치 항목을 보면 토지는 약 2370억원입니다. 현대제철 부지 가격이 일단 2370억원보다 낮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부동산 전문가들은 투자부동산 공정가치 항목은 감정평가액에 기준시가를 반영한 것이라 실거래가와 거리가 멀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 성수동 인근 공인중개사들은 “삼표레미콘 공장 부지를 현재 매각한다면 주변 시세인 3.3㎡(평)당 5000만원 정도에 거래될 가능성이 크다 ”고 전합니다. 이를 현대제철이 소유한 부지 면적 2만2924㎡에 적용하면 약 3473억원입니다. 이는 지난해 현대제철 당기순이익 8103억원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거액입니다. 현대제철이 이 가격에 성수동 부지를 판다면 과거 한전처럼 당기순이익이 491.2%씩이나 치솟진 않겠지만 분명히 늘어날 것이고 이는 주가에 호재로 작용할 것입니다.
문제는 부지 매각자가 한전의 파트너였던 현대차그룹이 아닌 서울시라는 데 있습니다. 부동산시장엔 ‘민간이 정부와 거래할 때 아무래도 시장보다 값을 덜 쳐주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객관적인 감정평가를 거쳐 거래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시장 평가와 다름없을 것”이라고 부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