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달러 값이 얼마까지 떨어질 것 같습니까?”
요즘 은행 외환창구 직원들은 유학 간 자녀에 대한 송금을 위해 달러를 사려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작년 말까지 달러당 1200원대 언저리에 머물던 원·달러 환율이 올들어 연일 떨어져(원화 가치 상승) 지난 12일에 1176.1원까지 내려갔기 때문이다. 13일에는 외환 당국의 시장 개입에 의해 소폭 오른 1179.5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최근 원화 강세는 기본적으로 외국인 주식 투자자금의 급격한 유입이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된다. 여기에다 정부와 금융계 일각에서 “국제 환(換)투기 세력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들고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재경부 최중경 국제금융국장은 13일 “한국경제 회복세가 부진해 원화 값이 상승할 이유가 없다”면서 “그런데도 원화 값이 상승하는 것은 국제 투기세력이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국장은 특히 ‘역외선물환(NDF)시장’을 투기의 온상으로 지목했다. 역외 선물환시장이란 각국 통화가 싱가포르와 홍콩 등 자국 밖에서 거래되는 선물(先物) 시장을 일컫는다.
그런데 최근 이 시장에서 투기적 목적에서 달러를 팔고 원을 사들이는 거래가 크게 늘면서 원화 가치가 오르고 있으며, 서울 외환시장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올들어 NDF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약 20억달러에 달해 작년 4분기의 15억달러나 2분기의 9억달러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대부분이 투기적 수요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류현정 한미은행 부부장은 “최근 외국인들이 주식 투자를 위해 한국에 들여온 자금 중 상당액이 환차익을 함께 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국인들이 헤지(위험회피)는 하지 않고 원화 가치가 오르는 쪽에 베팅(betting)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원화가 국제 투기세력의 표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작년부터 지속되는 글로벌 달러 약세(달러 이외 통화는 강세)의 흐름 속에서, 원화도 예외가 될 수 없다(결국 강세가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 때문에 유력한 해외 투자은행들은 올해 가장 매력적 투자 전략 중 하나로 ‘원화 매수’를 거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원화는 세계 통화 중 거의 유일하게 달러 대비 약세(-0.5%)를 기록했다. 원화가 ‘나홀로 약세’를 보인 것은 수출 차질을 우려한 외환당국의 강력한 외환시장 개입 때문이었다. 그 결과 지난해 원화 강세에 베팅한 국제 투기세력들은 한국 외환당국에 쓰라린 ‘판정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제 투기 세력들은 “올해는 한국 외환당국이 아무리 개입해도 세계적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라며 설욕을 다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농협선물 이진우 리서치팀장은 “최근 원화 가치 상승에 베팅하는 자금이 워낙 늘어난 데다, 외환 당국의 개입 여력도 한계에 달했다”면서 “올해는 외환 당국이 투기 세력과 한층 어려운 승부를 벌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