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 빼고 주변 두리번”…흉기 난동이 바꾼 도심 풍경

신림·분당 잇단 흉기 난동에…시민들 불안 고조
도심 속 만남도 자제…서울 근교로 약속 정하기도
전문가 "경찰만으로 한계…범정부 머리 맞대야"
  • 등록 2023-08-07 오후 4:32:12

    수정 2023-08-07 오후 4:32:12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할머니 팔순 잔치만 식당에서 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어요. 우리 가족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잇따른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으로 시민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7일 오전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시민들이 출근하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직장인 김모(31)씨는 지난 5일 서울 구로구의 한 식당에서 가족 행사를 마친 뒤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경기 성남 등에서 흉기 난동이 벌어지며 사상자가 나와 불안했는데 인터넷상에도 여러 지역에 걸쳐 흉기 난동 예고 글들이 계속 올라와 두려웠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인 중에 본인이 사는 아파트 앞에서도 흉기 난동을 벌이겠다는 예고 글이 올라와 남일 같지 않았다”며 “오후에 친구 만나기로 한 약속도 취소하고 집에만 있었다”고 말했다.

7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까지 접수된 살인예고 글은 총 187건이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이 같은 글이 쏟아지면서 김씨처럼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고 늘고 있다. 경찰의 강화된 치안 활동에도 안심하지 못하고, 어디서든지 ‘나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출·퇴근 길에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주변을 계속 확인하거나, 사람이 많이 몰리는 서울 도심의 약속을 기피하는 모습은 이 같은 불안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직장인 권모(34)씨는 출퇴근 길에 스마트폰으로 팟캐스트와 노래를 듣던 습관을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흉기 난동 사고로 어디서든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권씨는 “출·퇴근 시간이 각각 한 시간 이상이어서 보통 음악을 듣거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면서도 “당분간은 이어폰을 빼고 있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겠다는 이들도 있다. 경기 남양주서 여의도로 출·퇴근 하는 직장인 김모(32)씨는 “스마트폰을 보며 무료함을 달래곤 했다”면서도 “스마트폰을 하기 두려워 당분간 자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연인, 부부간의 데이트와 지인들 간의 약속 행태도 변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서울 도심 등을 벗어나 경기 인근 외곽으로 나가는 모습이다. 신혼을 즐기고 있는 홍모(35)씨는 지난 주말 원래 계획했던 홍대에서의 데이트를 취소하고 파주를 찾았다. 홍씨는 “아내와 서울 도심에 각종 체험활동 등을 즐겼는데 이번 사건으로 가기가 꺼려졌다”며 “차를 타고 외곽으로 나가는 게 안전할까 싶어 일정을 바꾸게 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경찰의 대처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범정부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장갑차를 한 달, 두 달 배치할 수도 없을뿐더러 경찰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부가 범정부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도 112신고만 받는 수동적인 모습에서 선제로 조처를 할 방안 등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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