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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어느덧 백악관 주인 자리를 꿰찬지 100일이 가까워지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이든 이득이 된다면 흥정하는 장사꾼으로서의 기질 말이다. 북한 위협을 해결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며 당선 전부터 외쳤던 환율조작국 지정과 무역불균형 해소 공약을 뒤집고 중국에 은근슬쩍 면죄부를 줬다. 시리아 내전 비(非)개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불신 등도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렸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못믿을 트럼프`라며 그의 변심을 비아냥거리고 있다.
그러나 애초부터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럭비공 같은 존재`라고 했던 항간의 평가에 비쳐보면 이같은 비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특히 사업을 통해 재산을 쌓아온 경력을 감안하면 실익(實益)을 취하기 위해 과감하게 명분을 버릴 줄 아는 그의 행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에 취임하면 첫 날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큰 소리쳤던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훈훈한 브로맨스 분위기를 풍기고 나더니 얼마전 TV인터뷰에서는 “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협조하고 있는데 어떻게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겠느냐”며 오히려 질문자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기성 정치인 출신이었다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지만 기업가 출신에게는 국가 안전보장(=안보)이라는 추상적 표현도 구체적인 경제적 이득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미국산(産) 제품 수입 및 대미 투자 확대, 방위비 분담 등을 압박하는 트럼프에게 할 말은 해야 한다거나 반대논리로 설득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심심찮게 들린다. 듣기엔 그럴싸 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만약 우리에게 안보가 최상의 우선과제라는데 모두가 동의한다면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결의가 필요한 때다. 장사꾼과는 흥정을 해야 하는 법이다. 트럼프와 첫 합을 겨뤘던 시진핑 역시 미국내 투자를 확대하고 호전적인 북한을 길들이겠다는 약속을 한 뒤 반대급부로 통상보복에 대한 큰 우려를 덜어내는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우리 대권 유력주자들은 얼마나 각오가 돼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