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병수기자]
지난 6일 조흥은행의 마지막 은행장으로 최동수씨가 추천됐습니다. 이를 놓고 `순혈주의` 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노·사·정 합의문을 통해 `조흥 출신`으로 행장을 선임토록 한다는 게 논란의 발단입니다. 조흥은행 부행장으로 영입돼 2년7개월을 근무한 최동수씨가 `조흥은행 출신이냐 아니냐`는 겁니다. 그러나 이 것이 문제의 핵심일까요? 김병수 기자가 이번 갈등의 또 다른 해석을 전합니다.
최동수씨는 46년 생입니다. 서울에서 출생했고, 용산고·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가 은행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9년입니다. 체이스맨하튼은행 서울지점에서 꿈 많은 은행원 생활을 시작했군요. 호주의 웨스트팩은행 서울지점장을 지냈고, 국내 금융계에는 94년 LG종금 상무를 시작으로 98년 8월 조흥은행 상무로 영입되면서 부터입니다.
조금은 장황하게 최 행장 후보의 이력을 살펴본 건, 그가 분명히 국내·외 금융업을 두루 거치면서 경험을 쌓은 경력자라는 점 때문입니다. 경력상으로는 분명히 한 은행의 은행장으로서 흠잡을 데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조흥은행 노조는 최 행장 후보의 행장 추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지난 파업 때 노·사·정이 합의한 향후 3년간 조흥은행을 이끌 은행장은 `조흥 출신`으로 한다는 내용이 문제입니다. 당연히 노조는 조흥은행 출신이란, 조흥은행에 입행한 `순수 혈통`으로 이해했고, 최 행장 후보는 이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이번 행추위 전과정을 사실상 주도한 신한측은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조흥은행 행추위는 최씨를 행장으로 추천한 후 “조흥은행에서 주장하는 ‘순혈주의’에 대한 장단점을 충분히 논의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edaily 08/07 16:37 조흥 행추위, “순혈주의 장단점 충분히 검토” 기사 참고) 이는 결국, 신한지주와 행추위가 충분히 조흥은행의 반발을 고려했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사실, 노·사·정 합의문에서 적시한 `조흥 출신`이라는 단어를 놓고 갈등이 벌어지는 양상을 보면 좀 우습기까지 합니다. 법률적으로 최 행장 후보가 `조흥 출신`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당연히 조흥 출신이죠. 그렇다고, 합의문에서 정리한 `조흥 출신`에 부합하는 것일까요? 이 또한 그렇지는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조흥은행 직원들은 물론이고 신한은행을 비롯한 신한지주, 그리고 언론까지도 조흥은행장 후보들을 언급하면서 이 같은 `꼼수`가 나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최씨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 행추위 활동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라는 점도 이를 방증합니다. 그럼, 노·사·정 합의문에 서명한 최영휘 사장과 신한지주의 라응찬 회장은 애초부터 이 같은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 전후사정을 명확히 알기는 현재로선 힘들어 보입니다. 실질적 의사결정권자인 라 회장과 최 사장의 입이 굳게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감안해, 이 같은 선택이 애초부터 설정된 `노림수`는 아니라고 보는 측이 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신한쪽에서 최근 나오는 얘기들을 종합하면, 더욱 `아하`라는 탄식이 나오는 까닭도 충분해 보입니다.
조각난 얘기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노·사·정 협상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라 회장과 최 사장도 최소한 행추위가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조흥 출신`에 대한 조흥은행측의 해석에 별 이견이 없었습니다.
독특한 집합적 문화를 만들어 온 라 회장의 스타일을 감안할 때, 조흥은행의 영업력 회복이 가장 절실한 상황에서, 조흥은행측에서 반발할 것을 뻔히 알면서 무리수를 두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이유입니다. 물론 이견은 있습니다만, 영업력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면 어찌됐건 조흥은행을 한 덩어리로 묶어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인물이 절실하다는 판단입니다.
이 같은 해석은 라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높아집니다. 은행권에서는 오래 전부터 ‘신한은행이 시작하면 리스크가 거의 없다’는 얘기가 정설로 통합니다. 그만큼 이것저것 많이 재보고, 충분히 검토하고 조금 늦더라도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이렇게 꼼꼼한 신한측의 문화와 경영철학은 조흥은행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확인됐습니다. 신한측은 행추위가 열리기 전 이미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통해 행장 후보들에 대한 여론을 점검했습니다. 올 초에 조흥은행 내부적으로 조용히 진행됐던 차기 행장감 여론조사 결과도 일찌감치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조흥은행의 반발을 충분히 예견하면서, 또한 최동수 행장으로는 영업력 회복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서 다시 신한측 고위 인사의 얘기와 신한지주의 얘기들을 정리해 봅니다. 우리나라 금융계의 고질적인 병폐이기도 합니다만, 이번 조흥은행장 선임을 놓고도 이 문제는 여지없이 드러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줄 대기` 악습이죠.
신한측 인사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라 회장이 예상보다 충격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행추위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는 라 회장과 최 사장실에 걸려오는 각계각층의 전화가 줄을 이었다고 꼬집기도 합니다. 특히 이번 행장 추천을 놓고는 유독 정치권의 전화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행추위는 대략 7명 정도의 후보를 놓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 7명의 대부분은 조흥은행측에서 얘기하는 순혈 조흥맨들입니다. 이미 은행을 떠난 경우도 있고, 현직에 있는 분들도 계셨지만, 사실상 최동수씨를 제외하면 순수 조흥은행 출신입니다.
이제 신한지주와 행추위의 코멘트로 되돌아가보겠습니다. 최씨를 행장으로 추천한 뒤 한 행추위 위원은 “순혈주의에 대해 충분히 검토했다. 이번 행장 후보 선정의 핵심 키워드는 변화고, 조흥은행이 변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뒀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신한측에서 조흥은행의 변화를 주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 동안 꾸준히 변화를 얘기하기는 했으나, 행장을 뽑는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변화`, 그것도 `인적청산`에 방점을 뒀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얘기로 들립니다.
결국, 라 회장은 끊이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가면서 `영업력 회복도 중요하지만 이런 문화로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했고,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상당히 수긍이 가는 대목입니다. 라 회장은 그 동안 신한은행과 지주회사를 이끌어 오면서, 최소한 `인사` 만큼은 전권을 행사해 왔습니다. 그래서, 신한의 인사는 정말 예측하기 힘들다는 말은 굳이 비밀도 아닙니다. 직원들도 인사문제를 얘기하는 것을 사실상 금기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소위 제왕적 CEO 문제죠. 그러나, 최소한 현재까지는 신한은행의 정비된 성과주의 시스템이 이를 잘 받쳐주고 있고, 라 회장의 카리스마가 `외풍`을 적절히 차단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고 보는 해석은 맞을 듯 합니다.
이런 문화와 강단을 보여준 라 회장 입장에서 보면, 조흥은행측 인사들의 이번 행태는 무엇보다 경계의 대상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한 인사가 표현하듯, 정말 화가 치밀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미 조흥은행 내에서조차 이번 행장 추천을 두고, `자멸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기도 합니다.
이 같은 신한측의 해석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최동수 카드도 최선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차선이죠. 신한측이 조흥은행 이사회 구성 문제를 놓고, 당초의 예상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점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신한측의 한 관계자는 `최동수 행장이 전반적으로 약하고 현재 같은 상황이면 은행내에서 외톨이가 되는 거 아니겠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을 거다. 옛날 서울은행에 영입됐던 강정원씨나 또 다른 사례와는 달리 최 행장 뒤에는 신한지주가 분명히 있다”는 말로 답을 대신 하더군요.